삼국지 보연사 ( ? ~ 238년) 손권의 부인
보연사는 서주 임회군 회음현 출신으로 손권의 신하이며 승상의 자리까지 올랐던 보즐의 일족입니다. 그 당시의 여인들은 미부인, 감부인처럼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정사삼국지에도 그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건강실록>에 그녀의 휘가 연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원의 전란을 피해
후한말 보연사의 어머니는 보연사를 데리고 중원의 전란을 피해 여강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194년 원술은 여강태수 육강에게 군량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고 분노해서 손책에게 육강을 치고 여강을 함락하면 여강태수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손책은 여강을 공격해서 격파했지만 원술은 유훈을 여강태수로 임명했습니다. 손책은 원술이 이전에도 태수의 자리를 약속했다가 주지 않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원술의 밑에서 벗어날 것을 결심합니다. 손책이 여강을 함락했을 때 보연사는 양쯔 강 남쪽으로 피신했습니다.
손권의 후궁이 되다.
200년 손책이 죽고 그의 동생 손권이 뒤를 이었습니다. 손권은 보연사에게 반해 그녀를 후궁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보연사는 손권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여자들을 손권에게 권하기도 했습니다.
황후의 대접을 받다.
손권은 보연사를 황후로 삼고 싶어 했지만 손권의 여러 신하들은 서씨가 황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손권의 고민은 계속 되었고 황후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궁 안에서 보연사는 황후 대접을 받으며 그녀의 친척들이 그녀에게 상소할 때 중궁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죽음
238년 보연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죽자 신하들은 그녀의 명호를 추증하자고 손권에게 청했고 손권은 이를 받아들여 그녀를 황후로 추증하고 장릉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두 딸
보연사는 손권과 두 딸을 낳았는데 첫째 딸 손노반은 주유의 아들 주순과 결혼했다가 주순이 요절(젊은 나이에 죽음)하면서 후에 전종과 다시 결혼했습니다. 둘째 딸 손노육은 주거와 결혼했다가 주거가 죽고 난 뒤 유찬과 다시 결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