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종회 (225년~264년)
종회는 예주 영천군 장사현 출신으로 자는 사계(士季)입니다. 종회의 아버지는 종요, 어머니는 장창포(창포는 그녀의 자이고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복형은 종육, 누나는 종태부인입니다.
어린 시절
종회는 어려서부터 민첩하고 현명하며 조숙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장제는 ‘그 사람의 눈동자를 관찰하면 그 사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라는 내용이 포함된 논문을 썼습니다. 종요는 장제와 종회를 만나도록 했고 장제는 종회를 보고 매우 기이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이 아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종회의 어머니 장창포는 조심성이 있고 엄숙한 성격으로 종회의 교육에 힘썼습니다. 종회는 장성한 후에 초서와 예서에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하며 밤낮없이 학문에 힘써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서량에 임명되었다가 상서중서시랑으로 승진했습니다.
<세설신어>의 일화
조비와의 만남
종육과 종회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어느 날 조비는 그들의 아버지 종요에게 두 아이를 보고 싶다고 했고 조비와 종육, 종회 형제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비는 땀을 흘리고 있는 형 종육에게 어찌하여 땀을 그렇게 흘리는지 물었습니다.
종육은 답했습니다. “두렵고 황공하여, 땀이 국물처럼 납니다.”
조비는 동생 종회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땀을 흘리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종회는 답했습니다. “두렵고 떨러서, 감히 땀이 나오지 않습니다.”
술에 관한 일화
종육과 종회 형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종요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약주를 훔쳐 마셨습니다. 종요는 중간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잠든척하며 그들을 관찰했습니다. 형 종육은 절을 한 후에 약주를 마셨고 동생 종회는 절을 하지 않고 마셨습니다. 종요는 일어나서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형 종육에게 어찌하여 절을 하였냐고 묻자 종육이 답했습니다.
“술은 예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기에, 감히 절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생 종회에게 어찌하여 절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종회가 답했습니다.
“훔치는 것이 애초에 예에 어긋난 일이기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후패의 평가
위나라의 하후패가 촉나라에 항복했을 때 강유가 하후패에게 “사마의가 정권을 잡았으니 다시 정벌할 뜻을 가지고 있겠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하후패는 “그들은 자기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하기에 아직은 밖의 일에 신경 쓸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종사계(종회)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젊지만 오와 촉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조비, 조예, 조방에 이어 조모가 제위에 오른 후 종회는 관내후에 봉해졌고 학문에 뛰어난 신하들과 조모와 함께 학문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관구검의 반란
255년 관구검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대장군 사마사가 동쪽 정벌에 나섰고 종회는 종군하며 기밀 사무를 담당했습니다. 사마사가 허창에서 죽자 사마소가 군을 통솔했고 종회는 군마 안에서 작전을 짰습니다. 이후 사마소는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종회는 황문시랑에 임명되고 무정후로 봉해졌습니다.
제갈탄의 반란
종회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종회는 관직에서 물러나 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257년 제갈탄이 사공에 임명되자 종회는 제갈탄이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사마소에게 말했지만 이미 임명된 후라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제갈탄은 반란을 일으켰고 종회는 사마소를 따라 수춘으로 출진했습니다. 오나라의 대장 전종의 아들 전역, 손자 전정, 조카 전단, 전편, 전집 등이 병사를 이끌고 와서 제갈탄을 지원했습니다. 그들의 일족인 전휘와 전의는 건업에 남아 있었는데 가족들 사이에 싸움이 나서 비밀리에 사마소에게 투항을 했습니다.
종회는 계획을 세워 전휘와 전의에게 거짓 편지(오나라 내부에서 전역 등이 성과를 내지 못함에 분노하여 그들의 가족들이 처벌받을 것이라는 내용)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거짓 편지를 받은 전역은 휘하의 병사들을 이끌고 항복했고 사마소군은 수춘을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 종회는 계책을 세워 수춘 공략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사마소는 더욱 종회를 아끼게 되었고 사람들은 종회를 칭송했으며 종회는 사례교위로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촉나라를 정벌하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촉나라를 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마소와 종회는 촉나라를 칠 준비를 시작했고 263년 종회는 약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촉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공격 과정에서 다리가 무너져 말이 빠지는 일이 생기자 앞에서 길을 닦는 역할을 맡은 허의를 처형했고 허의는 허저의 아들로 공이 있었기 때문에 소식을 들은 모든 군사들이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종회는 제갈서의 군대를 장악하기 위해 제갈서가 두려워서 전진하지 않는다는 상소를 올렸고 제갈서는 죄인용 수레를 타고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제갈서의 부대는 종회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등애의 뛰어난 활약으로 유선의 항복을 받아냈고 유선은 강유에게 사자를 보내 항복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강유는 광한군 처현까지 와서 병사들에게 병기를 버리라고 명령하고 부절과 전거를 호열에게 보내고 동쪽 길로 종회에게 가서 투항했습니다.
종회는 병사들을 엄격하게 관리하며 약탈을 하지 못하게 했고 겸손하게 행동하며 촉나라의 관료들과 교분을 맺고 강유와도 좋게 지냈습니다. 종회는 촉나라를 격파한 공으로 사도에 임명되었고 현후에 봉해졌으며 식읍 1만호를 받았습니다. 종회의 아들 두 명은 정후로 봉해지고 식읍 천호씩을 받았습니다.
모반을 계획하다.
종회는 강유와 가깝게 지내며 모반할 마음을 품게 됩니다. 등애는 익주를 다스리며 오나라를 정벌한다는 내용의 글을 사마소에게 올렸는데 사마소를 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종회는 이를 노려 등애가 반란을 일으킬 조짐이 있다고 모함했고 등애는 죄인용 수레를 타고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종회는 유일하게 꺼려했던 등애가 돌아가자 강유와 함께 모반을 계획했습니다. 종회는 강유를 선봉으로 삼아 야곡으로 가게하고 단기간에 낙양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마소도 종회를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환과 함께 장안에 주둔하며 이를 종회에게 알렸고 종회는 자신의 야심을 간파당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회는 일이 성공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물러나 촉 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회는 태후가 남긴 조서를 거짓으로 꾸며 사마소를 제거하라는 밀명을 받았다고 하며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고 자신이 신임하는 사람으로 교체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종회에게 가둔 사람들을 모두 처형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종회는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붙잡혀 있던 사람 중에 호열이 몰래 편지를 전달해 아들에게 보냈고 그의 아들 호연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병사를 이끌고 종회를 공격했습니다.
죽음
종회는 강유와 함께 맞서 싸우다가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종회가 죽은 이후 그의 부하였던 상웅이 장사를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