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진무, 진수, 진표

삼국지 진무 ( ? ~ 215) 후한 말 손책, 손권

 

진무는 양주 여강군 송자현 사람으로 자는 자열(子烈)입니다손책이 수춘에 있을 무렵 진무가 손책을 찾아가 모시길 원했고 손책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이때 진무의 나이는 18세였고 신장은 7척 7촌에 달했습니다이후 손책이 장강을 건너 정벌할 때 함께 하며 공을 세우고 별부사마가 되었습니다.

 

199년 손책은 여강태수 유훈을 격파하고 얻은 여강의 병사들 중에서 정예병을 뽑아 진무에게 이끌게 했습니다진무가 이끄는 정예병들을 많은 곳에서 활약했고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손책이 죽고 동생 손권이 뒤를 이었고 진무는 독오교를 맡게 되었습니다진무는 어질고 너그러운 성격으로 베푸는 것을 좋아해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의지하는 빈객들도 많았습니다손권도 진무를 좋아했고 공적을 인정받아 편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죽음

215년 손권군이 조조군을 공격한 합비 전투에서 진무는 손권을 따라 참전했다가 난전 중에 목숨을 잃고 세상을 떠났습니다손권은 애통해하며 장례에 참가했고 진무의 애첩을 순장시키고 빈객 2백 명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습니다훗날 동진 시대 역사가 손성은 손권이 진무의 애첩을 순장시킨 행위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진무는 주유의 옛 친구로 등장하며 유요군을 공격해 격파합니다손책과 만났을 때 얼굴을 황색에 눈은 붉은 색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됩니다유요의 잔당인 장영을 격파합니다.

 

주유의 지휘 하에서 적벽 전투남군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등 손책과 손권을 모시며 많은 공을 세우며 활약했습니다손권군과 조조군이 싸웠을 때 유수구에서 조조군의 무장 방덕과 진무는 일기토를 벌이게 됩니다진무는 나무 가지에 옷이 걸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방덕에게 베이고 전사합니다손권은 진무의 시체를 찾아 정중히 매장합니다.   




삼국지 진수 (삼국지의 저자 진수와는 다른 인물, 진무의 장남)

진무의 자식들은 진수와 진표가 있었습니다손권은 진수가 19세 때 별부사마에 임명하고 병사 5백 명을 주었습니다신병들 중에는 도망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진수는 그들을 설득해 마음을 얻었습니다손권은 진수를 높게 사며 교위에 임명했습니다이후 진수는 해번독으로 승진하고 도정후에 봉해졌고 22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국지 진표 (204년 ~ 237오나라

진표는 진무의 아들이고 진수의 동생으로 자는 문오(文奧)입니다진표는 어렸을 때부터 이름이 알려져 제갈각고담장휴 등과 함께 태자를 모시며 친하게 지냈습니다진표는 상서 글염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글염이 죄를 짓게 되자 다른 친한 사람들은 자신을 변명하는데 힘썼지만 진표는 신의를 지키며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표를 중하게 여겼습니다

 

형 진수가 죽고 진표는 진수의 어머니를 모시려고 했습니다진표의 어머니는 진표가 진수의 어머니를 모시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진표는 자신의 어머니를 설득했고 두 어머니는 감동해 서로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시명과의 일화

진표는 진무가 전쟁 중 전사한 것 때문에 장수가 되길 원했고 병사 5백 명을 거느렸습니다진표는 병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진심을 담아 접대했고 병사들은 진표를 좋아하고 따랐습니다한 번은 관물을 도둑질한 사람이 있었는데 무난의 병사 시명이 의심받아 체포되었습니다


시명은 심한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았고 형벌을 맡아보던 정위는 이를 보고했습니다손권은 보고를 듣고 군사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진표에게 일을 맡겼습니다진표는 시명에게 찾아가 시명이 묶여있던 기구를 부수고 목욕을 시키고 의복을 바꿔 입혔습니다술과 음식을 베풀며 시명을 설득하자 시명은 감동해서 자백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자기의 일당을 고했습니다


손권은 이 일을 듣고 진표의 명성을 생각해서 시명은 특별 사면하고 그 일당을 잡아들였습니다공을 인정받아 진표는 무난 우부독으로 승진했고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진표는 이를 사양하며 형 진수의 아들 진연에게 전해주고자 청했지만 손권이 그것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시명은 진표에게 감격해 이후로 바르게 행동했고 훗날 장군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234년 제갈각이 단양태수를 맡아 산월족을 토벌할 때 진표는 신안도위를 맡아 제갈각과 함께 참전했습니다


진표는 2백 명의 병사들을 하사받았는데 진표가 병사들에 대해 알아보니 그들은 병기를 다루는데 뛰어난 병사들이었습니다진표는 상소를 올려 그들을 정중하게 사양하고 관부로 돌려보내 정예병으로 쓰길 청했습니다조정에서는 조칙을 내려 그대가 공을 세워 나라에서 보답한 것인데 어찌하여 사양하는가?’ 라고 물었습니다진표는 나라에 적을 없애고 부친의 원수를 갚는 것은 사람이 근본으로 삼는 것으로 저 날랜 정예병들을 종으로 삼는 것은 저 진표의 뜻이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손권은 이를 듣고 진표를 훌륭하게 여겼습니다.

 

파양군의 오거 등이 반란을 일으켜 성곽을 공격해 함락시켰을 때 진표는 바로 군을 이끌고 오거를 격파했고 오거는 항복했습니다육손은 진표를 편장군에 배수하고 도향후에 봉했고 북쪽 장갱에 주둔하게 했습니다.

 

죽음

진표는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진표는 재산을 병사들을 위해 아끼지 않아서 죽던 날 진표의 가족들은 이슬을 맞고 서 있었습니다태자 손등은 그들을 위해 저택을 지어주었습니다.

 

진표의 아들 진오는 17세에 별부사마가 되었고 병사 4백 명을 얻었습니다진오가 죽고 진수의 아들 진연이 사마가 되어 진오를 대신하였고 진연의 동생 진영은 장군이 되고 제후에 봉해졌습니다.

'삼국지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 여범  (0) 2017.05.03
삼국지 - 유요  (0) 2017.05.03
삼국지 - 장합  (0) 2017.05.02
삼국지 - 마등  (0) 2017.05.02
삼국지 - 국의  (0) 2017.05.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