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장굉

삼국지 장굉 (153년 ~ 212후한 말

 

장굉은 서주 광릉군 사람으로 자는 자강(子綱)입니다장굉은 젊었을 때 수도였던 낙양에서 학문을 익혔습니다고향인 광릉군으로 돌아가 무재로 천거되어 대장군 하진태위 주준사공 순상에게 부름을 받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무재 중국 한나라 때수재를 달리 이르던 말관리 등용 시험의 하나.

 

강동의 이장

195년 손책이 강동의 이장으로 불리던 장굉과 장소의 뛰어난 소문을 듣고 찾아와 여러 번의 설득 끝에 등용했고 장굉은 정의교위로 임명되었습니다.

여포가 유비가 있던 서주를 습격해 서주를 차지하고 장굉을 무재로 추천하며 불러들이려고 했습니다장굉은 여포를 싫어했고 손책도 장굉을 신임하고 아꼈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199년 손책은 장굉을 허창(허도)로 보내 헌제에게 성과를 상소하게 했습니다장굉은 당시 사공의 위치에 있던 조조의 천거로 시어사에 임명되었고 공융과 친분을 맺었습니다조조는 장굉을 사공연으로 승진시키고 나중에는 구강태수에 임명하려고 했지만 장굉은 손책의 은혜를 잊지 않고 병을 핑계로 물러났습니다.

 

200년 손책이 죽고 손권이 뒤를 이었을 때 조조는 손권을 치려고 했습니다장굉은 조조에게 상중에 다른 세력을 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옳다고 조언했습니다조조는 장굉의 조언을 받아들여 손권을 토로장군과 회계태수로 임명했고 장굉을 손권에게 보내 손권을 돕게 했습니다.


 

 

 



손권

장굉은 손권의 밑에서 장소와 함께 내정정치에 힘썼고 손권에게 많은 조언을 했습니다.

208년 장굉은 장소고옹등의 문관들과 함께 조조와 전쟁을 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하지만 주유와 노숙의 설득으로 결국 조조와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적벽대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적벽대전 이후 손권이 합비에서 싸울 때 장굉은 군주가 직접 전선에 나가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조언했습니다이는 손책의 밑에 있을 때 손책이 단양의 도적들을 토벌했을 때도 한 말입니다.

 

장굉은 손권에게 수도를 말릉(건업)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고 손권은 조언을 받아들여 211년 천도를 실시했습니다. 212년 장굉은 병에 걸려 59년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장굉은 죽기전에 아들 장정에게 유서를 맡겼습니다손권은 장굉이 남긴 군주의 덕목에 관해 적혀있는 유서를 보고 눈물을 비 오듯 흘렸습니다장굉의 아들들은 장정장현이 있었고 손자는 장현의 아들 장상입니다.



게임에서의 장굉

삼국지 게임 중 가장 유명한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오나라에서 장소 다음가는 정치의 2인자로 강동의 이장이란 말에 어울리게 나와서 내정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입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장굉은 주유의 추천으로 손책군에 들어가게 됩니다죽으면서 말릉(건업)으로 천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손권은 이를 받아들여 실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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