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손견 (155년? ~ 191년?) 후한 말 손문대
손견은 양주 오군 부춘현 사람으로 자는 문대입니다.
17세 때 아버지와 배를 타고 가다가 수적들이 약탈품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손견은 칼을 잡고 언덕으로 올라가 병사를 지휘하는 것처럼 연기했고 수적들은 관군이 온 줄 알고 달아났습니다. 손견은 뒤를 쫒아가 수적 한 명을 베고 돌아와 이름을 알리고 관리가 되었습니다.
172년 회계 구장현에서 허창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손견은 병사를 모아 관군과 합류해서 허창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습니다. 관리로 임명되어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184년 황건적의 난 때 손견은 중랑장 주준 밑에서 참전하여 공을 세우고 별부사마가 되었습니다.
변장, 한수의 난
184년 겨울 변장, 한수가 서량지역에서 난을 일으켰습니다. 185년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나선 거기장군 장온은 손견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장온은 동탁을 소집했는데 늦게 온 데다 태도도 좋지 않았습니다. 손견은 군율에 따라 동탁을 참수하자고 장온에게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온군은 변장, 한수를 상대로 매우 고전했습니다. 동탁이 반군에게 크게 승리하면서 반군은 도망을 쳤고 장온은 탕구장군 주신에게 뒤를 쫒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동탁은 주신의 보급로를 지켜야한다고 조언했고 손견은 상대의 보급로를 끊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장온을 두 가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변장, 한수가 주신의 보급로를 끊는 바람에 크게 패배했습니다.
장사, 영릉, 계양을 토벌하다.
187년 장사군, 영릉군, 계양군에서 구성, 주조, 곽석, 관곡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손견은 장사 태수에 임명되어 구성을 진압했습니다. 다른 군에서 손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군의 경계를 함부로 넘으면 죄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손견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도우러 가서 주조, 곽석, 관곡을 모두 진압했습니다. 이 공으로 오정후에 임명되었습니다.
반동탁 연합군
190년 동탁이 권력을 잡아 권력을 휘두를 때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었고 손견도 참여했습니다. 같은 반동탁 연합군이었던 형주자사 왕예와 무릉태수 조인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조인은 손견에게 격문을 보여주며 광록대부 온의의 격문이라고 속였습니다. 격문을 보여주며 왕예를 해치자고 했는데 손견은 평소 왕예가 자신을 무식한 무관이라고 가볍게 대해 안 좋은 관계였기에 그 말에 응했습니다. 손견이 병사를 이끌고 왕예를 해치울 당시 왕예가 ‘도대체 내 죄가 무엇이냐’라고 묻자 손견은 ‘모르는 것이 죄’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손견은 동탁을 피해 남양으로 갔던 후장군 원술을 따랐습니다. 손견은 동탁군과 교전하여 서영을 상대로 큰 패배를 했습니다. 패배를 하고 도망칠 때 손견이 늘 쓰던 붉은 두건을 조무가 쓰고 상대를 속이며 추격을 따돌렸습니다.
용맹한 기세
191년 양인에서 다시 군을 수습한 손견은 동탁이 보낸 호진과 여포의 군사를 격파하고 도독 화웅을 효수했습니다. 손견이 무서운 기세로 동탁군을 물리치며 진군하자 원술은 손견을 견제하기 위해 보급을 중단했습니다. 손견은 주둔하고 있던 양인에서 원술이 있던 노양까지 100리 거리를 밤새 달려가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계획을 설명하고 사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원술은 이를 듣고 의심을 풀고 다시 보급을 했습니다.
동탁은 손견군의 위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이각을 보내 화친을 청하고 손견의 아들들에게 관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손견은 ‘동탁의 삼족을 멸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는다’ 라며 거절했고 계속 진격했습니다. 낙양에서 90리 떨어진 곳에서 동탁과 대치하다가 손견은 동탁을 크게 이기며 더욱 기세를 올려 낙양을 지키던 여포까지 물리치고 낙양에 입성했습니다. 동탁은 낙양을 훼손한 뒤에 장안으로 도망쳤고 손견은 동탁이 훼손한 종묘와 능을 수습하고 노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옥새가 발견되어 원술이 가졌습니다. 장안으로 간 동탁은 왕윤과 왕윤이 꾀어내 배신한 여포에게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반동탁 연합군은 분열해 원술은 공손찬과, 원소는 유표와 손을 잡고 서로 싸웠습니다. 혼란의 시대가 오고 각지의 관리들은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원소는 주흔, 주앙, 주우 형제를 보내 예주를 치게 했습니다. (주흔, 주앙, 주우는 기록마다 다르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습니다.) 손견은 군을 이끌고 이들을 물리쳤습니다.
이후 손견은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했습니다. 요격하러 나온 황조를 격파하고 유표의 거점 양양까지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현산으로 달아난 황조, 여공을 쫒다가 화살과 돌을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의 시기
손견은 37살에 죽었지만 각 사서마다 죽은 시기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1, 192, 193년으로 다양한데 오록에 실린 손견의 아들 손책의 표에 17살에 아버지를 잃었다고 나와 있어 배송지는 이를 계산해 191년이 옳다고 했습니다.
손견의 가족
손견의 형 손강은 일찍 죽었고 동생 손정이 있었습니다. 형의 아들들 손분, 손보는 손견이 거병하자 그를 따랐습니다. 손권의 아내는 오국태였고 자식들은 손책, 손권, 손익, 손광, 손랑, 손부인(손상향) 등이 있었습니다.
손견의 뒤를 손책이 이었고 손책이 죽고 손권이 뒤를 이었습니다. 손권은 오나라를 건국하고 아버지 손견을 무열황제로 추존(죽은 뒤에 그를 높여 부르는 특별한 호칭)했습니다.
강동의 호랑이
삼국지 연의에서는 고정도를 가지고 용맹하게 싸우며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립니다. 연의에서는 반동탁연합이 결성되고 승리하며 기세를 올리다가 원술이 군량을 보급하지 않으면서 화웅에게 패하고 맙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낙양으로 입성해 우물가에서 옥새를 발견하고 추궁하는 원소와 유표에게 ‘내가 옥새를 가졌다면 칼과 화살을 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맹세하고 돌아갑니다. 유표와 전투에서 유표를 밀어붙이지만 여공의 유인책에 걸려 돌과 화살을 맞고 세상을 떠납니다.
손견은 매우 용맹했고 여러 기록들에서도 그가 용맹하다라는 기록이 많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용맹함으로 연의에서도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고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용맹하고 강인하여 외로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명성을 떨쳤으며 충장지렬(忠壯之烈)이 있었다. 다만 큰아들 손책과 마찬가지로 언행과 성격이 가볍고 조급하여 스스로를 해치고 말았다.’고 평했습니다. 삼국지에 주석을 단 배송지는 손견이 반동탁 연합군 중 가장 충렬(忠烈)이란 말에 어울린다고 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