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황개 ( ? ~ ? ) 후한 말
황개는 영릉군 천릉현 사람으로 자는 공복(公覆)입니다. 남양태수 황자렴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갖은 고생을 겪었지만 학문과 병법을 익히며 관직에 올랐습니다. 황개는 영릉의 군리로 있다가 효렴으로 천거되었습니다.
손가 3대
황개는 손견이 의병을 일으키자 손견을 따랐고 남의 도적들을 격파하고 북에서는 동탁을 격파하며 공을 세워 별부사마의 자리에 오릅니다.
손견이 죽고 아들 손책이 뒤를 이으면서 손책과 함께 황조를 공격하는데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손책이 죽고 동생 손권이 뒤를 이으면서 황개는 손권을 모셨고 손가 3대를 걸쳐 공신으로 활약했습니다.
산월족과의 일화
산월족이 복종하지 않고, 도적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현이 있었는데 황개가 그곳의 수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도적들을 물리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석성현의 현리 둘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모두 아홉 현을 지키면서 가는 곳마다 약한 사람과 청렴한 사람들을 도우며 강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을 억눌렀습니다. 이런 황개의 모습을 보고 산월족은 스스로 와서 복종했습니다.
적벽대전
적벽에서 손권군과 조조군이 싸울 때 황개는 주유의 부장으로 참여했습니다. 황개는 조조군을 한차례 물리치고 주유에게 화계를 건의하고 주유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위장한 배들을 준비하고 조조에게 거짓 편지로 항복을 알렸습니다. 조조에게 간 황개는 여러 배에 동시에 불을 질렀고 사나운 바람으로 해안 위의 진까지 불길이 번졌습니다. 이 화공으로 손권군은 조조군에게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무릉만과의 일화
무릉만(중국 무릉 지방에 살던 이민족)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손권은 황개를 태수로 임명합니다. 병사가 500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성문을 열어두고 적들이 반쯤 들어올 때 기습하는 전략을 쓰면서 많은 적과 우두머리를 참수하면서 반란을 평정했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일어난 반란을 모두 평정하면서 파, 예, 유, 탄의 읍장과 군후들이 예를 받들며 황개를 뵈기를 청했고 안정되었습니다. 후에 장사군 익양현이 산적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황개는 또다시 그들을 평정했습니다.
죽음
황개는 관직에 있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개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고 후에 손권은 제위에 오른 뒤 황개의 아들 황병에게 관내후의 작을 하사했습니다. 황개의 죽음은 215년일 가능성이 높지만 다르게 해석되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연의
삼국지 연의에서 황개는 손견이 의병을 일으킬 때부터 따르며 손책, 손권까지 모십니다. 적벽대전에서 항복을 위장하기 위해 고육지계(적을 속이기 위해 제 몸을 괴롭히면서까지 짜내는 계책)를 쓰며 곤장을 맞았습니다. 이후 화공을 성공시키며 적벽대전에서 대승하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