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신헌영 (191년~269년)
신헌영은 위나라의 시중 신비의 딸로 남동생 신창이 있었으며 양탐과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총명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생각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조비에 대한 이야기
조조의 아들 조비가 태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 조비가 신비의 목을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신군(신비)은 제가 얼마나 기쁜지 아십니까?”
신비는 이 얘기를 딸인 신헌영에게 해주었고 신헌영은 그 얘기를 듣고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태자는 군주를 대신해 종묘, 사직을 지키는 자이니 우선 근심을 해야 하고, 국가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걱정을 해야 마땅한데 기뻐하는 것을 보니 위나라가 융성하게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창에게 조언하다
신헌영의 동생 신창이 대장군 조상의 참군이 되었을 때 사마의는 조상을 죽이고 권력을 빼앗기 위해 조상이 성을 나간 사이 성문을 닫았습니다. 대장군사마 노지는 병사들을 이끌고 조상에게 향했고 신창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습니다.
신창의 노지의 말을 듣고 고민하며 누나인 신헌영에게 물었습니다.
신헌영은 “세상에는 알지 못하는 일이 많지만, 사마의가 법도에 가까울 것이다. 명제(조예)가 돌아가셨을 때 태부 사마의에게 후사를 부탁했고 이는 사람들의 귀에 남아있다. 사마의와 조상과 함께 후사를 부탁 받았는데 조상은 홀로 권력을 쥐고 전횡을 일삼으니 이는 왕실에 대한 불충이고, 옳지 않다. 이번에 사마의가 일어난 것은 조상을 베어서 나무라려는 것이다.”
신창 “그렇다면 제가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까요?”
신헌영 “나가지 않는 것도 방법이지만 직무는 사람의 대의이다. 위험이 있어도 대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하가 되었다면 그 일을 방관하는 것을 길하지 못하고, 그 쪽을 위해서 죽어도 일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을 나갈 수밖에 없다.”
신창은 신헌영의 조언을 듣고 성 밖으로 나갔고 사마의는 조상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신창은 누이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면 의를 버릴 뻔 했다고 말했습니다.
종회에 대한 이야기
종회가 진서장군이 되었을 때 신헌영은 조카 양호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신헌영 “종사계(종회)는 어찌하여 서쪽으로 가는 것입니까?”
양호 “촉나라를 멸망시킬 생각입니다.”
신헌영 “종회는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곤 합니다. 언제까지나 신하로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며 그가 다른 야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됩니다.”
양호 “숙모님, 말을 조심해 주세요.”
종회는 서쪽으로 출정하며 신헌영의 아들인 양수를 참군으로 청했습니다. 신헌영은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다른 날에는 국가를 위해서 걱정했는데, 오늘 그 걱정이 우리 집안에까지 미치는구나.”
양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사마소에게 자신이 참군에서 빠질 것을 청했지만 사마소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신헌영은 양수에게 말했습니다.
“예로부터 군자는 집에서는 부모에게 호도하고, 밖에서는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고, 일에 있어서는 그 의무를 생각하고, 도의에 관해서는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를 생각하며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을 생각했다. 군대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인서(자비심이 깊고 마음이 어질며 마음을 쓰는 것이 후함) 뿐이란다.”
신헌영의 걱정대로 종회는 촉에 이르러 반역했지만 신헌영의 아들 양수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비단옷 일화
신헌영의 조카 양호가 신헌영에게 비단옷을 선물로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신헌영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비단옷을 뒤집어 입었습니다.
죽음
269년 신헌영은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에는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장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비 - 신헌영의 아버지
신창 - 신헌영의 동생
양탐 - 신헌영의 남편
양수 - 신헌영의 아들
양호 - 신헌영의 조카
'삼국지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 장패 (0) | 2017.04.11 |
---|---|
삼국지 - 교모 (0) | 2017.04.11 |
삼국지 - 곽여왕 (문덕황후 곽후 문덕곽황후) (0) | 2017.04.10 |
삼국지 - 조절 (헌목황후 헌목조황후) (0) | 2017.04.10 |
삼국지 - 두씨 (0) | 2017.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