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장패

삼국지 장패

 

장패는 연주 태산군 화현 출신으로 자는 선고(宣高)입니다장패의 아버지 장계는 현의 옥연을 맡고 있었습니다장계는 태수가 사사로운 마음으로 사형을 하려하는 것을 거부했고 태수는 이에 화가 나서 장계를 잡아 관청으로 끌고 갔습니다.

 

장계를 호송하는 병사들은 백 명에 달했습니다장패는 열여덟의 나이로 동료 수십 명과 매복하고 있다가 호송하는 병사들을 공격해 아버지 장계를 구출했습니다이 사건으로 장패는 용맹하다는 명성을 얻었습니다장계와 장패는 서주의 동해로 망명했습니다.

 


황건적의 난

184년 태평도의 교주 장각을 중심으로 농민들이 봉기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습니다장패는 도겸을 따라 황건적들을 격파하고 공을 인정받아 기도위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장패는 손관오돈윤례 등과 함께 병사를 모으며 총수가 되어 계양에 주둔했습니다.

 


여포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후 동해상 소건은 여포에게 항복했습니다장패는 소건을 공격해 군수 물자를 빼앗았는데 이 일로 여포는 장패를 공격하게 됩니다하지만 대립은 오래가지 않았고 곧 화해했습니다.


조조가 여포를 토벌할 때 장패는 병사들을 이끌고 여포를 지원했습니다하지만 여포는 조조에게 패배하며 붙잡혀서 죽었고 장패는 도망쳐서 몸을 숨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조조를 따르다.

조조는 장패의 행방을 찾아서 그를 만난 후 높게 평가하며 등용했습니다장패와 함께 오돈운례손관손강도 조조를 따르게 되었습니다조조는 장패를 낭야국의 상으로 임명하고 청주와 서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조조의 수하였던 서흡과 모휘는 진궁장막의 반란에 함께 했다가 반란이 실패로 끝나자 장패에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조조는 유비를 통해 장패에게 서흡과 모휘의 목을 보내도록 전했습니다장패는 유비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처럼 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의지하는 사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저는 조공으로부터 목숨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명령을 거역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장군(유비그들을 위해 변명을 부탁드립니다.”

유비는 장패의 대답을 조조에게 전했습니다조조는 기뻐하며 장패를 칭찬했고 서흡과 모휘를 태수로 임명했습니다.

 

조조는 장패 등에게 원소의 청주를 공격하게 했습니다조조와 원소가 대치할 때 장패는 병사들을 이끌고 청주를 공격했고 이 때문에 조조는 원소와의 대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조조가 남피에서 원담을 멸망시켰을 때 장패는 조조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자신의 가족들이 업으로 이주할 것을 요청했습니다조조는 장패의 충성심을 칭찬하며 허락했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을 업으로 보낸다는 것은 사실상 볼모로 두며 복종의 뜻을 보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장패는 동방의 주에 반란이 일어나자 그들을 격파하고 평정하며 공을 인정받아 열후에 봉해졌습니다장패는 위로장군이 임명되고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장패는 우금과 함께 창희를 토벌했고하후연과 함께 황건적의 잔당 서화 등을 격파했습니다이 공을 인정받아 서주자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조조가 손권을 공격할 때 장패는 선봉으로 나서며 거소에서 그들을 격파했습니다. 209년 장료가 진란을 토벌할 때 장패는 우금과 함께 매성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내고 별동대를 이끌어 오나라의 한당과 싸워 손권이 진란을 도울 수 없게 했습니다장패는 협석에서 한당을 격파하고 서구에 주둔했습니다손권은 장패가 서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퇴각했는데 장패는 이를 추격해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결국 손권은 진란을 구원하지 못했고 장료는 진란을 격파했습니다.

 

조조와 손권이 유수구에서 싸울 때 장패는 장료와 함께 선봉이 되었습니다하지만 큰 비가 내리며 전투를 치르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장료는 후퇴를 생각했습니다장패는 조조가 유불리를 따지는 것에 밝으므로 명령이 내려올 것이니 기다리자고 했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는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장료는 귀환하여 조조에게 장패와의 일을 전했고 조조는 이에 감탄하며 장패를 양위장군에 임명하고 가절로 삼았습니다조조는 장패와 하후돈을 거소에 주둔하게 하며 수비를 맡겼습니다.

 


조비

조조가 죽고 조비가 뒤를 이었습니다장패는 진동장군에 임명되고 무안향후에 봉해졌습니다조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장패는 개양후에 봉해졌다가 양성후에 이봉되었습니다.

 

장패는 조휴와 함께 동포(동구)에서 오나라의 여범의 군대가 폭풍우에 휩싸인 틈을 타 그들을 격파했습니다장패는 조정에 들어가 집금오가 되었습니다조비는 군사 문제가 일어나면 늘 장패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조예

조비가 죽고 조예가 뒤를 이었습니다장패는 식읍 500호가 더해져 3500호가 되었습니다.

장패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 장애가 뒤를 이었습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장패는 여포의 부하로 나오며 여포가 죽자 장료의 설득으로 조조에게 항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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