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괴월 ( ? ~ 214년)
괴월은 형주 남군 중려현 출신으로 자는 이도(異度)이고 전한의 한신의 부하 괴철의 후손입니다. 괴월은 지모가 뛰어났고 큰 풍채로 웅장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장군 하진은 괴월의 명성을 듣고 그를 불러들여 동조연에 임명했습니다.
하진을 떠나다.
괴월은 하진에게 여러 차례 부정부패한 환관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하진은 마음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괴월은 하진이 크게 될 사람이 못된다고 생각하여 여량현령을 자청하여 여량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유표와 친분을 맺다.
유표는 형주자사 왕예가 손견에게 죽은 이후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지만 형주의 상황은 수많은 호족들이 세력을 일으키고 치안이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유표는 이 때문에 목적지인 형주의 무릉으로 가지 못하고 남군에 머무르며 괴월, 괴량, 채모 등과 친분을 맺었고 대책을 생각했습니다.
괴월은 치세(화평한 세상)에는 인의를 앞세우고, 난세에는 권모를 앞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괴량은 인의지도(어짊과 의로움의 도독)을 행한다면 물이 흐르듯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표는 괴월은 단기 대책, 괴량은 장기 대책이라고 평했고 괴월의 말을 따라서 각 토호의 우두머리들을 유인하여 모두 죽이고 그 부하들을 흡수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잔당들은 거의 항복을 했는데 장호와 진생은 양양을 끼고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유표는 괴월과 방계를 보내 그들을 설득했고 괴월은 공을 인정받아 장릉태수로 임명되고 번정후로 봉해졌습니다.
항복을 권하다.
199년 괴월과 유선, 한숭은 유표에게 조조에게 항복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유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8년 유표가 죽고 아들 유종이 뒤를 이었습니다. 조조군은 형주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했고 괴월은 한숭, 동조연, 부손과 함께 유종에게 항복을 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했고 조조는 형주를 얻고 나서 “형주를 얻은 것은 기쁘지 않으나 괴이도(괴월)를 얻은 것은 기쁘오” 라고 말하며 괴월을 광록훈에 임명했습니다.
죽음
214년 괴월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괴월은 죽기 전에 조조에게 자신의 집안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괴월은 괴량의 동생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정사에는 괴량과의 관계가 나와 있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 손견이 낙양에서 전국옥쇄를 발견하고 강동으로 돌아갈 때 유표의 명령을 받은 괴월은 채모와 함께 손견을 공격합니다.
유비가 유표에게 의지하고 있을 때 유비는 장무와 진손을 토벌하고 얻은 말 적로를 유표에게 주었는데 괴월은 적로가 주인을 해칠 말이라며 타지 말라고 말합니다.
채모는 유비를 암살할 계획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괴월에게 유표의 명령이라고 속이며 참여하게 했고 문빙과 왕위에게 조운을 유비에게서 떼어놓게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이적의 도움을 받아 적로를 타고 단계를 뛰어넘어 도망칩니다.
이후는 정사와 마찬가지로 유표가 죽은 뒤 유종에게 항복을 권하고 조조에게 항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