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서서 ( ? ~ 234년) 유비 조조
서서는 예주 영천군 출신으로 자는 원직(元直)입니다. 서서의 처음 이름은 복(福)이었고 한미한(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한) 가문의 자식이었습니다. 서서의 처음 이름이 단복이라는 것은 <위략>에 서서가 단가(한미한 가문)의 자식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오독했지 때문이고 원래 이름은 서복이었습니다.
검술을 버리고 학문에 힘쓰다.
서서는 어려서부터 협에 임했고 검술을 좋아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원수를 대신 갚아주고 흰 흙을 발라 얼굴을 숨기고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도망치다가 관원에게 붙잡혔습니다. 관원이 서서에게 이름을 물었지만 서서는 대답하지 않았고 관원은 서서를 수레에 태우고 북을 치며 저자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서서의 이름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서서의 일당들이 함께 서서를 구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고 이 사건으로 서서는 칼을 버리고 학문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서서가 처음 학사에 나갔을 때 다른 유생들은 그가 예전에 도적질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함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서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홀로 청소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며 학문에 힘썼습니다. 서서는 같은 군 출신의 석도와 친해졌고 중원에 전쟁이 일어나자 석도와 함께 형주로 이동했습니다. 서서는 형주에 도착한 후에 제갈량, 맹건 등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유비를 만나다.
유비가 신야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 서서는 유비와 만나게 되었고 서로를 중하게 여겼습니다. 서서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했고 유비가 제갈량을 데려오라고 하자 그를 만날 수는 있지만 데려오지는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비는 제갈량을 만나러 가서 세 번 만에 그를 만나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삼고초려)
조조에게 가다.
유표가 죽고 유표의 아들 유종이 뒤를 이었는데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항복을 청했습니다. 유비는 조조와 싸웠고 이 과정에서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서서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유비에게 양해를 구하고 석도와 함께 조조군에게 가서 항복했고 유비는 제갈량과 함께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죽음
조조군에 들어간 서서는 조위와 팽성상을 거쳐 우중랑장, 어사중승까지 승진했고 석도는 태수와 전농교위에 있었습니다. 서서가 어사중승으로 있을 때 선복이었기 때문에 서서라고 개명한 것은 그 후로 추측됩니다. 234년 서서는 팽성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갈량의 평가
제갈량은 유비의 밑에서 승상이 되어 다른 이들을 가르치며 “서원직(서서)의 십분의 일과 동유재(동화)의 부지런함을 따를 수만 있다면 나라에 충성함은 물론이요 나도 가히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서서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훗날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 농우로 출진했을 때 서서와 석도의 관직을 듣고 “위에는 인재가 정말 많구나! 어찌하여 두 사람이 쓰이지 않는 것인가!” 라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서서와 석도의 관직은 낮은 편이 아니었지만 제갈량이 그들의 능력을 그만큼 높게 평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지연의
정사에서는 서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불확실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 서서는 뛰어난 책략을 가진 인물로 나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단가(한미한 가문)을 선씨 가문으로 잘못 해석하여 서서의 가명이 선복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서서는 유비를 만나 야광, 여상 형제를 격파하고 조인의 팔문금쇄의 진을 간파하며 조인과 이전을 격파합니다. 조조는 서서의 재능을 탐냈고 정욱이 책략을 마련합니다. 정욱은 서서의 어머니의 글씨체를 흉내를 내어 거짓 편지를 서서에게 보내고 서서는 편지를 받고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하고 조조에게 가게 됩니다.
적벽대전에서 방통의 연환계를 간파했지만 모른 척하고 마등을 대비한다는 핑계로 전장에서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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