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심배 ( ? ~ 204년) 원소 원상
심배는 기주 위군 음안현 사람으로 자는 정남(正南)입니다. 심배는 전풍과 기주목 한복의 밑에 있었지만 한복은 그들을 중용하지 않았습니다. 원소가 한복에게 기주를 빼앗으면서 심배는 원소를 섬기게 되었고 원소는 심배를 치중에 임명했습니다.
조조와의 싸움
199년 원소는 공손찬을 격파하고 조조군과의 싸움을 준비합니다. 심배는 곽도와 함께 빠른 시간 안에 승부를 보자는 단기 결전 전략을 주장했고 저수와 전풍은 지구전 전략을 주장했습니다. 원소는 심배와 곽도의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때 조조 진영에서 공융과 순욱의 논의가 있었는데 순욱은 심배를 고집불통에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200년 마침내 원소는 조조와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원소군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갔고 조조군을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원소의 책사 허유의 배신을 계기로 전세가 역전되어 원소군은 관도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투에 참여했던 심배의 두 아들은 조조군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허유가 배신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는데 심배가 허유의 자식과 조카들의 비리를 알아내 체포한 일이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평소 심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맹대와 장기는 원소에게 심배가 군권에서나 정치에서나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두 아들이 조조에게 붙잡혀 있어 배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봉기가 심배를 변호하면서 심배는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봉기가 심배를 변호하자 평소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원소는 봉기에게 물었습니다. 봉기는 다투었던 것은 사사로운 정이고 지금 진언하는 것은 나랏일이라고 말했고 원소는 봉기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 때문에 심배는 봉기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원소의 후계 문제
202년 원소가 병으로 죽고 후계자 문제로 원상과 원담의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원소는 장남 원담을 자신의 형의 양자로 보내면서 후계자 권리를 잃게 만들었기 때문에 총애했던 원상을 후계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원상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원상을 지지하다.
심배와 봉기는 원소의 셋째 아들 원상을 지지했고 곽도와 신평은 원소의 장남 원담을 지지했습니다. 심배는 봉기와 함께 원소의 원소의 유언을 만들어 내서 원상을 후계자로 옹립했습니다.
원담은 청주에서 병사를 이끌고 업에 도착했지만 원상이 뒤를 이었기 때문에 여양에 머물며 거기장군을 자칭했습니다. 거기장군은 원소가 처음 거병했을 때 칭한 관직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승계를 불복하고 독립을 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조조군이 여양에 쳐들어오자 원담은 원상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심배는 원상에게 원군을 보내지 못하게 했고 매우 분노한 원담은 원상에게 파견된 봉기를 참수했습니다. 봉기가 죽자 원상은 직접 출진하여 원담을 도우러 갔고 심배는 남아서 업을 지켰습니다.
여양성 부근에서 긴 전투 끝에 원상군은 조조군을 격파했고 원담은 조조군을 추격해서 더 큰 피해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원상은 원담을 의심해 받아들이지 않았고 원담에 대한 무기와 병력의 보급을 중단하고 청주에 돌아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원상과 원담의 내전
곽도와 신평은 원담에게 원담이 폐출된 이유는 심배의 계책 때문이라며 모함했습니다. 안 그래도 원상의 대우 때문에 매우 화가 나 있었던 원담은 군사를 이끌고 원상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원담군은 원상군에게 패배했고 도망친 원담은 다시 병사를 모아 업을 노리려고 했지만 심배가 주축이 되어 원담군을 격파했습니다.
싸움에서 패해 달아난 원담과 곽도는 조조에게 항복을 하고 맙니다. 신평은 원상군에게 붙잡혔고 심배는 곽도와 신평이 원가를 망쳤다며 신평 일족을 처형했습니다. 심배는 조조에게 항복한 원담에게 원수에게 항복한 것을 꾸짖고 화해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지만 원담은 듣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싸움
심배는 업을 지키고 원상은 원담이 있는 평원을 공격할 때 조조는 군을 이끌고 업을 공격했습니다. 심배는 소유가 조조와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소유는 시가전을 벌이다가 패하고 달아났습니다. 조조군이 토산과 땅굴로 업을 공격하자 심배는 적절한 대처로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조조가 성 주위에 구덩이를 파서 수공을 펼치면서 심배는 큰 피해를 입고 맙니다. 원상이 군을 이끌고 심배를 도우러 왔지만 패배했고 고간의 배신까지 겹치며 원상군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심배는 병사들의 사기를 독려하며 조조가 업성 가까이 정찰을 오자 숨겨 놓았던 쇠뇌를 일제히 발사했습니다. 몇 발은 조조에게 명중하기도 했지만 조조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업성의 동문을 지키던 심배의 조카 심영이 배신하면서 성문을 열었고 조조군이 밀려왔습니다. 심배는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가 싸웠지만 사로잡히고 맙니다. 신평의 동생 신비는 조조군이 업을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평의 일족을 풀어주러 갔지만 이미 모두 처형당한 후였습니다. 분노한 신비는 말채찍으로 붙잡힌 심배를 때리면 욕했고 심배는 오히려 원가를 망친 신비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죽음
조조는 심배를 높게 평가하며 자신을 따르라고 설득했지만 심배는 끝가지 원가에 대한 충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심배는 처형당하는 자리에서 “나의 임금이 북쪽에 계신다.” 라며 원상이 있는 북쪽을 향하고 앉아 처형당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