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장수 ( ? ~ 207년) 후한 말 조조
장수는 양주 무위군 조려현 사람으로 표기장군 장제의 조카입니다. 한수와 변장이 양주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금성의 국승이 조려현장 유준을 공격해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당시 현리로 있었던 장수는 기회를 노리다가 국승을 해치웠습니다. 사람들은 장수를 의로다고 칭송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장수를 따랐습니다.
192년 동탁이 왕윤과 여포 등에게 죽고 이각과 곽사는 가후의 조언을 받아 장안을 포위하고 공격했습니다. 장수의 삼촌 장제는 이각과 함께 장안을 공격했고 장수로 장제를 따랐습니다. 이각의 패거리가 장안을 차지하게 되면서 장수는 건충장군에 임명되고 선위후에 봉해졌습니다.
장제의 죽음
196년 홍농에 있던 장제는 식량이 부족해서 병사들이 굶주리자 남양군의 양성을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맙니다. 장제의 조카인 장수가 뒤를 이었고 장수는 형주의 유표와 연합하며 완에 주둔했습니다.
조조의 목숨을 위협하다.
197년 조조는 군을 이끌고 육수까지 진군했고 장제는 조조에게 항복했습니다. 조조는 장제가 죽어 미망인이 된 장제의 부인을 첩으로 삼았고 장수는 조조의 행동에 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조조는 장수의 측근이었던 호거아의 용맹을 칭찬하며 금을 상으로 내렸고 장수는 조조가 자신을 은밀히 제거하려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장수는 가후의 계책을 받아들여 조조를 습격했고 조조를 호위하던 전위, 조조의 장남 조앙, 조조의 조카 조안민과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조는 전위와 아들, 조카의 희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도망쳤고 장수는 완성에서 양성으로 본거지를 옮겼습니다.
조조군과의 싸움
장수는 유표와 연합하며 세력을 키웠고 조조군의 조홍과 싸워 승리하기도 했지만 조조가 직접 군을 이끌고 내려오자 완, 호양, 무음을 내주고 맙니다. 198년 조조는 양성을 포위했고 장수는 유표군의 도움을 받아 포위를 풀었습니다. 조조가 원소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회군하자 장수와 유표는 조조군을 추격하려고 했고 가후는 장수와 유표에게 추격하면 위험하다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장수와 유표는 조조군을 추격하다가 복병에 당해 크게 패하고 말았고 돌아와서 한탄을 했습니다. 가후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추격하면 이길 것이라고 조언했고 장수가 이를 믿고 다시 추격해서 조조군에게 피해를 입히고 전투에서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조조에게 항복하다.
조조와 원소의 대립이 이어졌고 장수는 양 진영에서 도움 요청을 받게 됩니다. 가후는 장수에게 원소는 세력이 강해 자신들을 경시할 것이라고 했고 조조는 헌제(유협)를 모시고 있어 명분이 있고 열세의 상황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중용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장수는 조조와의 원한(전위, 조앙, 조안민의 죽음) 때문에 고민했지만 결국 조조에게 항복을 하게 됩니다.
조조는 장수와의 원한을 잊고 장수를 받아들여 양무장군에 임명했고 아들 조균과 장수의 딸의 결혼을 주선했습니다. 200년 조조군과 원소군이 싸운 관도 전투에서 장수는 공을 세워 파강장군으로 승진했고 205년 남피에서 원담을 격파할 때도 함께하며 식읍이 2천호로 늘어났습니다.
죽음
207년 장수는 유성의 오환족을 공격하러 가는 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수의 뒤는 아들 장천이 뒤를 이었고 이후 219년 장천은 위풍과 함께 모반을 꾀했다는 명목으로 처형당하고 맙니다. 장수의 자식은 장천 외에도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위략>에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그대는 내 형(조앙)을 죽이고 무슨 낯으로 남을 쳐다보는가!” 라며 눈치를 주며 괴롭혔고 견디다 못한 장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