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인 (168년 ~ 223년) 위
조인은 예주 패국 초현 사람으로 자는 자효입니다. 조인의 할아버지는 영천태수 조포, 아버지는 장수교위 조치입니다. 조조의 사촌동생이고 하후돈, 하후연, 조홍과 함께 했습니다. 조조가 거병할 때 조인은 천여 명의 병사를 모아 그를 따랐습니다.
조조가 원술을 칠 때 조인은 많은 적군을 베고 포로로 잡았습니다. 조조가 도겸을 칠 때 주로 기병을 지휘하며 선봉을 맡아 공을 세웠습니다.
유비가 여남으로 가서 유벽과 결탁하며 조조의 후방을 노렸고 조조는 조인에게 기병을 내주어 그들을 격파했습니다.
관도에서 조조와 원소가 싸울 때 원소는 한순을 보내 후방을 쳤고 조인이 이에 대응해 한순을 격파했습니다. 또 조인은 사환 등과 함께 원소군의 군량을 탈취했습니다.
아쉽게 남군을 내주다.
209년 조조가 적벽에서 패하고 조인, 서황에게 강릉을 지키게 하고 악진에게 양양을 지키게 했습니다. 유비, 손권은 강릉을 포위하고 관우가 북쪽 길을 끊으면서 조인을 고립시켰습니다. 오의 주유가 우금을 포위하며 위기에 빠뜨렸고 조인은 수십의 병력을 이끌고 돌격해 우금을 구출했습니다. 주유가 진영을 시찰할 때 조인이 화살로 그를 맞추면서 오른쪽 겨드랑이에 부상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일년이나 버텼지만 결국 남군을 내주고 맙니다.
마초가 거병하여 조조와 싸울 때 마초는 동관까지 진군했고 조인은 마초와 대치했습니다. 조인은 조조가 올 때까지 버티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관우를 상대로
218년 하후연이 전사하고 조조가 한중에 도착한 시기에 조인은 모반을 일으킨 소백, 전은을 토벌했습니다. 조인은 관우를 견제하기 위해 번성으로 파견되었고 완에서 후음이 모반을 일으키자 219년 그를 토벌했습니다.
번성에서 관우와 대치하며 버티는 도중 한수가 범람하면서 조인과 우금의 군대는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관우를 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우금을 생포하고 방덕을 참수했습니다. 조인은 번성으로 돌아가 성을 지켰고 관우는 번성과 양양을 포위했습니다.
번성의 상황은 관우에게 포위되고 성 안에 물이 차올라 매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서황이 구원을 오고 오나라의 여몽이 형주의 배후를 공격하면서 남군 태수였던 미방이 항복을 했습니다. 미방이 항복하면서 관우는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되어 결국 오나라에 의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220년 조조가 죽고 오의 진소가 양양을 빼앗았습니다. 조인은 서황과 함께 진소를 무찌르며 양양을 탈환했습니다.
주환에게 패하다.
조비는 조인을 대장군에 이어 대사마에 임명합니다. 222년 이릉 대전(유비가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를 친 전쟁) 이후 위나라는 오나라를 치게 됩니다.
조인은 유수를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고 다른 도시를 노리는 척하면서 유수를 공격했습니다. 수비하던 주환은 다른 도시로 병력을 나누어 보냈고 5천의 병력으로 수만의 조인군을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주환은 자신의 병력이 약해 보이게 속이고 조인군을 유인했습니다.
조인은 병사를 둘로 나누어 공격했고 각개격파 당하며 패배했고 얼마 후 회군했습니다.
223년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조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게임에서의 조인
중요한 거점을 지키는 모습에 삼국지 관련된 게임에서는 그와 관련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삼국지 13에서는 철벽이라는 전법을 보유해 사용할 경우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평가
조인은 궁술, 마술, 수렵을 좋아했던 용맹한 장수로 조조의 거병 초기에는 정벌을 담당하며 활약했고 조조군이 자리를 잡은 뒤에는 방어, 토벌을 담당하며 중요한 지점을 지켰습니다. 오나라의 개입이 있긴 했지만 관우를 상대로 번성을 지켜내면서 용장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