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악진 ( ? ~ 218년)
삼국지 악진은 동군 위현(양평군) 사람으로 자는 문겸(文謙)입니다. 악진은 조조가 진류에서 거병할 때부터 그를 따랐습니다. 고향에서 병사 천여 명을 모집하여 군가사마, 함진도위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전투
악진은 194년 복양에서 조조가 여포와 싸울 때, 195년 옹구에서 장초와 싸울 때, 고에서 교유와 싸울 때 모두 선봉에 서서 싸웠습니다.
198년 안중에서 장수와 싸울 때, 하비에서 여포를 정벌할 때도 함께 하며 공을 세웠습니다.
199년 장양이 죽은 뒤 원소의 부하가 된 휴고를 사환, 조인과 함께 사견에서 격파했습니다.
200년 서주에서 거병한 유비를 조조가 평정할 때도 함께 싸우며 공을 세웠습니다.
원가와의 싸움
원소가 대군을 동원하여 남하했을 때 우금과 악진은 5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원소군을 유인해 격파하며 뛰어난 활약을 했습니다. 또 조조를 수행하며 오소를 수비하고 있던 순우경을 무찔렀습니다.
원소가 죽은 뒤 원담, 원상과 싸울 때(202년부터 203년까지) 악진은 여양에서 그들을 공격해 장수 엄경을 참하고 유격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황건적을 무찌르고 낙안군을 평정했고 장료와 함께 음안을 공략하여 주민들을 황하 이남으로 이주시켰습니다.
204년 업성 포위전에 참가해 업성을 함락시키고 205년 남피에서 원담을 공격할 때 동문으로 앞장서서 돌입하였고 몸소 적군 성루에 먼저 올라가 크게 용맹을 떨쳤다고 합니다. 또 별동대를 인솔하여 옹노를 격파했습니다.
조조가 광평방면으로 침입한 오환을 상대하러 출정했을 때 병주자사 고간이 호관을 점령하고 사례로 쳐들어왔습니다. 악진은 이전과 고간을 격파했고 호관으로 물러난 고간을 206년 조조가 직접 공격해서 함락시켰습니다. 이 후 악진과 이전은 청주 북해의 해적 관승을 토벌하고 양책을 지켰습니다.
조조가 형주를 점령한 뒤 악진은 양양으로 가서 그 곳을 지켰습니다. 청니에서 악진과 문빙은 관우, 소비 등과 싸워서 이기며 도망치게 했고 유비가 차지하고 있었던 임저장 두보, 정양장 양대를 격파했습니다.
합비 전투
212년 겨울 악진은 조조를 수행하며 손권을 정벌했고 장료, 이전과 함께 합비를 지켰습니다.
215년 오나라의 손권이 10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7천명이 있는 합비를 포위했습니다. 당시 조조가 편지를 주었는데 장료, 이전은 나가 싸우고 악진은 수비하고 설제는 참전하지 말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병사의 차이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많은 장수들은 두려워 했고 장료가 이를 설득해서 손권군이 준비를 갖추기 전에 공격하자고 하여 힘을 합쳐 손권군을 무찔렀습니다.
수많은 공적으로 우장군 자리에 오른 악진은 218년(건안 2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아들 악침이 후사를 이었습니다. 악진의 아들은 악침이고 손자는 악조입니다.
만화에서의 악진
다른 삼국진 관련 매체에서는 악진이 비중이 적거나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삼국지 조조가 주인공인 만화 창천항로에서는 악진이 담력이 뛰어난 장수로 멋지게 표현됩니다.
평가
악진은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고 담력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조조가 거병할 때부터 정말 수많은 전투에 함께 했고 선봉으로 싸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장군의 직책에 있으면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조조 휘하의 훌륭한 장수로는 우금, 장료, 악진, 장합, 서황 5명이 으뜸으로 악진은 용맹함과 과감함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