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가후

삼국지 가후 (147년 ~ 223)


가후는 양주 무위군 고장현 사람으로 자는 문화(文和)입니다삼국지 위서에서는 순욱순유가후를 같은 권에 모았으며 조조군 최고의 3대 책사 중 한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후는 젊은 시절 효렴이라는 낮은 관직에 있었습니다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저족 반란군에게 붙잡혀 위기에 처했습니다가후는 저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단경이라는 인물의 외손자라고 속이며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동탁이 장안에서 권력을 잡았을 때 가후는 동탁의 사위이자 부하인 우보의 참모였습니다동탁이 여포에게 죽으면서 이각곽사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가후의 설득으로 장안을 장악하여 다시 정권을 잡습니다이 일 때문에 훗날 삼국지에 주석을 단 배송지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가후는 관리 선발의 임무를 맡아 정치 체제 개선에 힘썼다고 합니다.


배송지 – 중국 송 초기의 역사가로 진수의 삼국지에 주석을 덧붙였습니다.

 

이각과 곽사가 서로 싸울 때 이를 중재하다가 위험에 처한 가후는 도망쳐서 같은 고향 출신인 단외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장수의 책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조조의 목숨을 위협하다.

장수에게 조조가 쳐들어왔을 때 거짓으로 항복하여 조조군을 방심하게 만들고 연회에서 공격하는 가후의 책략으로 전위조앙조안민은 목숨을 잃고 조조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조조가 두 번째로 침공해 왔을 때 조조군은 위격전살지계를 사용했고 이를 간파한 가후는 허유엄살지계로 조조군을 격파했습니다.


위격전살지계 – 한쪽에 병력을 집중하는 척 하다가 다른 쪽에 방비가 약해지면 그 곳을 공격하는 성동격서와 비슷한 전략 (성동격서 –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

허유엄살지계 – 적의 작전을 간파하여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작전을 역이용하는 전략

 

조조는 원소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회군하고 장수와 유표는 조조군을 추격하려고 했습니다이 때 가후는 지금 추격하면 패한다고 조언했고 그들은 추격했다가 패했습니다장수와 유표가 돌아와 한탄하자 가후는 다시 한 번 추격하면 이길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유표는 남고 장수가 추격했고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조조의 책사로

조조와 원소의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장수에게 양 쪽의 사신이 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가후는 원소는 형제 원술조차 신뢰하지 않고 세력도 강력해서 자신들을 경시할 것이라고 했고 조조는 헌제(유협)를 옹립하고 있어 명분이 있고 열세의 상황에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중용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장수는 조조에게 투항했고 조조는 원한을 잊기로 했습니다.


(조조와 장수의 원한 – 조조의 아들 조앙형의 아들 조카 조안민충신 전위를 잃었습니다훗날 조조의 아들 조비는 원한을 잊지 않고 장수를 핍박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관도 대전에서 조조와 원소가 싸울 때 결전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조조에게 가후는 원소의 군영을 공격할 것을 조언하며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조조가 형주의 항복을 받고 강동을 정벌하러 가려할 때(적벽대전가후는 원정에 반대하며 내정을 충실히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조조와 한수마초가 동관에서 싸울 때 가후는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하는 책략으로 일부러 지운 흔적을 남긴 편지를 한수에게 보내 마초가 편지를 보며 의심하게 되었고 결국 조조가 승리했습니다.

 

조조가 후계자 문제로 조비와 조식 사이에서 고민할 때 조비는 가후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가후는 조비에게 누구를 대하든 겸허하게 행동하고 태자로서 성실히 임하라고 조언했습니다조조도 가후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가후는 원소와 유표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원소와 유표는 장자를 후계자로 삼지 않았고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조의 후계자는 조비가 되었고 가후를 상공 중 하나인 태위로 임명했습니다가후는 은퇴하고 조용히 살다가 22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가후의 자식은 가목가방이 있었고 손자는 가모가 있었습니다.

 


평가

가후는 삼국지연의와 정사에서 모두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고 책략이 매우 뛰어났습니다처세술도 뛰어나 원한이 있었던 조조 밑에 들어가 그 시대에 매우 장수한 것으로 평가되는 정욱과 비슷하게 오래 살았고 가후의 자손들도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갔습니다능력이 뛰어났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타인들이 경계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 조용하게 생활하고 자녀들의 혼인 상대로 명문 출신을 고르지 않았습니다후인들은 한 번도 실패한 계책을 내지 않았다며 가후를 호평했습니다.

'삼국지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 순유  (0) 2017.05.25
삼국지 - 정욱  (0) 2017.05.24
삼국지 - 악진  (0) 2017.05.24
삼국지 - 하후연  (0) 2017.05.23
삼국지 - 조인  (0) 2017.05.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