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장료

삼국지 장료 (169년 또는 171년 ~ 222)


장료는 병주 안문군 마읍현 사람으로 자는 문원(文遠)입니다.


장료는 섭일의 후예로 흉노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성씨를 바꿨습니다.


섭일은 마읍의 호족으로 흉노에 거짓 투항하여 흉노 선우 군신을 속여 마읍으로 유인했다가 실패해서 원한을 샀습니다.


 




장료는 젊어서 군의 관리가 되어 정원의 추천으로 수도에 갔습니다하진이 죽고 동탁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군 소속이었습니다


여포

여포가 동탁을 죽이고 이각이 정권을 잡으면서 마중적토 인중여포 (말 중에는 적토마가 사람 중에는 여포가 최고)로 유명한 여포와 함께 했습니다



조조를 따르다

여포가 조조에게 토벌 당하면서 조조에게 항복하여 조조 밑에서 활약을 펼칩니다.


백마 전투에서 유비가 서주에서 패배하고 뿔뿔이 흩어져 장료가 관우를 찾아가 투항하도록 설득합니다조건부로 투항한 관우와 장료는 선봉이 되어 백마 전투에서 안량을 베는 활약을 합니다.

 

조조가 형주를 평정하기 직전 장료는 장사에 주둔했습니다반란을 계획한 사람이 밤중에 불을 지르고 소란을 피우자 장료는 병사들을 다독이며 침착하게 반란의 주모자를 처리했습니다.




합비 공방전 


장료하면 합비 공방전


<삼국지 만화 창천항로의 한 장면>


장료가 정말 멋지게 표현된 만화 창천항로



장료가 온다 

료래료래(遼來遼來



손권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합비로 쳐들어 옵니다장료악진이전의 위나라의 수비 병력은 7000명으로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손권이 쳐들어 올 때를 대비하고 조조가 주고 간 교서에는 장료이전은 나가 싸우고 악진은 수비하고 설제는 싸움에 참가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병력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장수들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료는 상대가 준비를 갖추기 전에 공격하여야 한다며 동료 장수들의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장료는 정예병 800명을 모아 이전과 함께 손권의 지휘 막사까지 기습했고 수십 명의 병사와 2명의 장수를 베고 포위를 돌파해 합비로 복귀했습니다. 

많은 피해가 아닐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손권의 오나라군은 사기가 떨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병까지 겹쳐 힘든 상황에 빠졌습니다.


손권군은 결국 후퇴하기로 결심합니다후퇴하는 손권군을 장료가 추격하며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합비 공방전의 활약으로 장료는 오나라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나라 강동의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 장료가 온다고 말하면 울음을 그쳤다고 하는 일화까지 생겼습니다.


 

 

 



관우와의 관계


삼국지정사에서 관우가 조조에게 투항했을 때 관우는 같은 항장(항복한 장수출신인 장료서황과 친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들의 관계를 부각해 관우와 장료의 인연이 깊게 나옵니다.

여포가 토벌당하면서 사형에 처해지는 상황에서 관우는 장료를 변호하며 목숨을 살려줍니다


유비가 서주에서 패배하면서 흩어질 때 장료는 관우를 찾아가 조조군에 투항하도록 설득합니다


관우의 마음이 진정한 속마음이 궁급했던 조조는 장료를 보내 관우의 속마음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죽음

조조가 죽고 아들 조비의 밑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장료는 222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료의 뒤는 아들 장호가 이었습니다.



평가

정사의 저자인 진수는 장료와 함께 악진우금장합서황에 대해 언급하며 양장(명장)으로 이 다섯 장수가 가장 뛰어났다고 평했습니다.

담력이 뛰어나고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사내였으며 의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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