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성공영

삼국지 성공영

 

성공영(成公英)은 양주 금성군 출신으로 씨가 아닌 성공씨이며 이름은 '영'입니다.

 

한수

중평(184~189) 말년 한수를 따르며 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211년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토벌하려 할 때 관서의 군벌들은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마초 등 관중십장이 조조에게 대항하기로 뜻을 모으고 한수를 설득했습니다. 염행은 반대했지만 한수는 이를 수락하여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동관 일대에서 전투를 벌인 후 한수와 조조가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염행이 한수의 호위를 맡았습니다. 조조는 염행이 자신과의 전쟁을 반대했다는 것을 알고 수도에 있던 한수의 가족들은 해치고 염행의 아버지는 살려둔 것을 알리며 염행에게 효자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실을 안 한수는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딸과 염행을 혼인시켰습니다.

 

한수의 의도대로 조조는 염행을 의심했습니다. 초조해진 염행은 결국 반기를 들어 한수를 공격하게 됩니다.

 


의리

214년 한수가 화음에서 격파당해 황중으로 돌아왔을 때 많은 부하들이 한수를 떠났지만 성공영만은 의리를 지키며 남았습니다.

 

한수를 해치고 항복하려는 생각으로 한수를 공격한 염행의 행동으로 한수가 한탄하며 말했습니다.

한수 친척이 배신을 하고 군대도 부족하니, 강중을 따라 촉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겠소.”

 

성공영 군을 일으킨 지 수십 년인데 비록 패배했다고 하지만 어찌 군문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한수 나는 늙었소. 선생의 생각을 어떻소?”

성공영 조조는 멀리까지 올 수 없고, 하후연만 있습니다. 하후연의 군대는 우리를 쫓기에는 부족하고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없습니다. 강중에서 잠시 버티면 돌아갈 것입니다. 옛 사람들을 모으면 해볼 만할 것입니다.”

 

한수는 성공영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한수가 이전에 강족에게 베푼 은혜가 있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성공영의 말대로 하후연은 돌아갔고 대신 염행을 남겨두었습니다. 한수는 병력을 이끌고 염행을 공격했고, 염행은 도망치려 했습니다.

 

 

 

 



조조

하지만 상황이 불리해지자 국연, 장석 부하의 배신으로 한수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성공영은 조조에게 항복을 선택했습니다. 성공영이 한수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에 조조가 감동하여 그를 열후에 봉했습니다.

 

성공영이 조조를 따라 사냥에 나섰습니다. 사슴 세 마리가 앞을 지나치자 성공영이 화살 세 발을 소아 모두 맞췄습니다. 조조가 박수를 치며 말했습니다.

 

조조 한문약(한수)에게만 절개를 다할 수 있고 나에게는 안 되는 것이오?”

 

성공영이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어 대답했습니다.

 

성공영 명공(조조)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한수가 있었다면 이 곳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조는 그를 높게 평가하여 가깝게 대하고 공경했습니다.

 

 

죽음

220년 하서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성공영은 장기의 참군으로 참전하여 이건기첨, 치원다 등을 토벌했습니다. 이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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