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진교

삼국지 진교

 

진교는 서주 광릉군 동양현 출신으로 자는 계필(季弼)입니다.

 

진교는 원래 광릉군의 유씨 출생이었지만 어머니의 친가인 진씨 성을 따라 진교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삼국지 위서>

 

원술, 손책을 거절하고 진등을 따르다

진교가 전란(전쟁으로 인한 난리)를 피해 강동으로 피난을 갔을 때 손책과 원술의 초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진교는 태수 진등의 부탁으로 공조가 되었습니다.

 

진교가 허창으로 가는 일이 있을 때 진등이 허창에서 자신의 평이 어떤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진교가 허창에서 돌아와 말했습니다.

진교 멀고 가까운 곳의 평을 들어보니 모두 당신이 오만하고 자긍심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진교의 말을 들은 진등이 말했습니다.

진등 내실이 청정하고, 화목하여 덕행이 겸비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 진원방 형제를 존경하고...중략...공경하는 바가 이와 같거늘 무슨 교만함이 있으리오!”

 

진등을 진교를 깊이 존경하고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손권의 공격을 받아 포위되었을 때 진등은 진교를 보내 조조에게 구원 요청을 하게 했습니다.

조조는 구원을 요청하러 온 진교를 보고 높게 평가하며 그를 허창에 머물게 하려고 했습니다.

진교는 조조의 청을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조조는 진교의 말을 듣고 구원병을 파견했고 크게 승리했습니다. 진등은 복병을 여러 곳에 두어 손권군을 격파했습니다.

 


조조

이후 조조는 진교를 초빙하여 사공연속으로 삼았고 상현 현령, 정남장사, 팽성 악릉 태수, 위군서부도위에 임명했습니다.

 

한 번은 곡주의 한 백성이 병에 들었는데, 병에 걸린 백성의 아들이 소를 바치고 기도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밭가는 소를 보호라는 법령이 있어 병에 걸린 백성의 아들이 처형당할 위기에 빠졌습니다. 진교는 그를 효자라고 하며 사면을 청했습니다.

 

진교는 승진하여 위군태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위군에는 감옥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이 천 여명이나 있었습니다. 진교는 장기간의 미결 처리로 인한 피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직접 모든 죄상을 조사하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조비

진교는 승상장사, 위군태수, 서조속을 거쳐 상서로 임명되었습니다.

220년 조조가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은 상례에 따라 천자의 칙명을 기다려 태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진교는 빨리 조비가 위왕으로 즉위하여 혹시 왕위를 쟁탈하려는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조비는 왕위에 오르는데 필요한 모든 과정을 하루 안에 끝마치고 조조의 뒤를 이었습니다.

 

조비가 즉위한 후 진교는 이부를 담당하게 되었고, 고릉정후로 봉해졌으며, 상서령으로 승진했습니다.

 


조예

226년 조비가 세상을 떠나고 조예가 뒤를 이었습니다. 조예가 상서문으로 와서 문서를 보려고 한 일이 있었는데 진교는 그것은 자신의 직책이라며, 그 직책을 자신이 다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파면되기를 청했습니다. 결국 조예는 수레를 돌려 돌아갔습니다.

 

진교가 상서령으로 있을 때 유엽이 진교가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른다며 참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진교는 두려운 마음이 생겨 첫째 아들 진본에게 물었지만 진본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진교가 둘째 아들 진건에게 묻자 진건이 말했습니다.

진건 폐하(조예)께서는 총명하고 덕이 있으시고, 아버님은 국가의 대신이십니다. 만약 지금 폐하께서 아버님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만 공이 되지 못할 뿐입니다.”

 

수일 뒤에 조예가 진교를 보자고 하자 진교는 다시 둘째 아들 진건에게 상의했습니다.

진건 폐하의 고민이 풀리신 듯합니다.”

조예는 결국 진교를 용서했습니다.

 


죽음

237년 진교는 상서령에서 사도로 승진하여 삼공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교의 자식들은 진본, 진건, 진치가 있었고 장남 진본이 뒤를 이었습니다.

 



삼국지연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진교는 적벽대전 후 조인과 함께 강릉을 지킵니다. 주유가 죽었다는 거짓 정보에 속은 조인이 출진하고 진교는 서의 방비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보낸 조운에게 성을 빼앗기고 패주합니다.

조조가 세상을 떠난 뒤 황제의 조칙을 기다리지 말고 바로 위왕에 오르도록 조비에게 권했습니다. 이후 헌제에게 화흠, 왕랑과 함께 양위를 강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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