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문앙 (문숙)

삼국지 문앙 (문숙)

 

문앙(238~ 291)은 예주 초국 초현 출신으로 자는 차건(次騫)입니다. 중국 삼국 시대 조위부터 서진 시대의 무장으로 조위의 무장 문흠의 둘째 아들입니다. 문앙의 형은 이름이 알려져있지 않고 문앙의 동생은 문호입니다.

 

 

문숙

문앙은 어렸을 때 쓰던 이름(아명)으로 원해 이름은 문숙입니다. 문흠의 아들로 나이가 어렸으나 용력이 남보다 뒤어났습니다. <위씨춘추>

<삼국지><진서>등에 문앙으로 기록되어 있어 문앙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관구검, 문흠의 난

255년 관구검과 문흠은 사마씨가 이끄는 정권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관구검은 6만의 군사를 이끌고 항성에 주둔했고, 문흠은 아들 문앙과 함께 2만의 군사를 이끌었습니다.

 

사마사는 동생 사마소에게 낙양을 맡기고 직접 출진하여 양양으로 향했습니다. 진동장군 제갈탄에게 수춘을 공격하게 하고, 정동장군 호준에게 귀로를 끊게 했으며, 형주자사 왕기에게 진남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사마사는 왕기의 의견을 채택해 남돈 지역을 점령했고, 관구검은 갈옹의 의견을 듣고 남돈을 취하려 하지만 한발 늦었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여 항성으로 돌아갑니다.



사마사는 연주자사 등애에게 낙가성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문흠은 관구검과 상의해 낙가성으로 진군합니다. 문흠은 상대의 수가 적은 것을 보고 진군했지만 도착해서 사마사의 대군이 도착해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당시 18세로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용맹했던 문앙이 말했습니다.

문앙 성에 올라 북을 쳐 기세를 돋우길 청합니다. 적군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이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문흠은 군사를 둘로 나누어 밤중에 양 갈래로 사마사의 진영을 공격했습니다. 문앙이 선봉으로 도착하여 용맹을 떨치자 사마사의 진영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사마사는 이때의 충격으로 병이 다시 재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흠이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고 날이 밝아오자 문앙은 후퇴를 결정했습니다.

 


사마사는 좌장사 사마반에게 문흠군을 추격하게 했습니다. 문흠군은 퇴각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문앙의 활약으로 상대에게도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자치통감> 문앙은 필마단기로 수천 기병 속에서 단번에 100명을 베었고, 이를 6~7 차례 반복했더니 추격하던 기병들이 감히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위서 관구검전> 사마사는 기병을 풀어 문흠을 추격했고, 문흠은 많은 피해를 입으며 도망쳤습니다. 관구검은 문흠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밤중에 도망쳤고 무리는 붕괴했습니다.

 

결국 기울어진 전황을 회복하지 못한 문흠은 오나라의 손준에게 망명했습니다.

사마사는 관구검의 난을 진압했지만 병세가 위독해지면서 얼마 후 세상을 떠났고, 그의 동생 사마소가 뒤를 이었습니다. 사마씨가 위나라의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제갈탄의 난

정권을 장악한 사마소는 반역의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사마소는 심복 가규의 아들 가충을 진동대장군 제갈탄에게 보냈습니다. 제갈탄은 가충과 대화를 나누며 나라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고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충은 이를 사마소에게 보고했고, 사마소는 양주자사 악침에게 밀서를 보내고 제갈탄을 사공으로 삼겠다는 조서를 보냈습니다. 함정을 눈치 챈 제갈탄은 군사를 이끌고 양주로 가서 악침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제갈탄은 오나라에게 사마소를 토벌할 뜻을 전했고, 오나라의 손침은 전역, 전단을 주장으로 삼아 군사를 보냈습니다. 오나라로 투항했던 문흠은 안내관이 되어 함께 출진했습니다.

 

사마소는 황제 조모와 함께 출정했습니다. 낙양과 장안의 군사를 동원하여 진남장군 완기를 선봉으로 세웠습니다. 왕기의 활약으로 제갈탄군과 오나라군을 격파했습니다.



연이은 패배와 수하들의 항복으로 전황이 불리해진 제갈탄은 전략의 방향이 달랐던 문흠을 처형했습니다.

 

문앙, 문호 형제는 아버지 문흠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쳐 사마소에게 항복했습니다. 사마소는 문앙 때문에 자신의 형 사마사가 병세가 악화되어 죽은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수춘성을 공략하기 위해 그를 장군으로 삼고 관내후에 봉했습니다.

사마소의 생각대로 문앙, 문호는 수춘성 공략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갈탄은 도망치다가 위장 호분에게 목숨을 읽었고, 사마씨가 위나라의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사마소는 문앙, 문호 형제에게 문흠의 시신을 거두고 장례를 지낼 수 있게 했습니다.


 

 

 



독발수기능의 난

270년 선비족 일파인 독발선비의 수령 독발수기능은 서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진주자사 호열은 독발수기능과 대치하다가 원군으로 온 유기가 도와주지 않아 대패하고 전사했습니다.

서진은 독발수기능 토벌을 위해 석감과 두예를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토벌 시기를 두고 의견이 충돌했습니다. 결국 두예는 정위에게 압송당했고, 석감은 독발수기능에게 패배하고 퇴각했습니다.

 

271년 독발수기능은 양주를 공격했고 다른 선비족들이 호응했습니다. 양주자사 견홍은 고립되어 패배하고 사망했습니다. 서진은 가충이 토벌대장으로 임명했지만 가충은 딸의 혼인을 핑계로 시간을 보냅니다.

 

272년 양주자사로 파견된 양흔은 독발수기능의 세력이 강해진 것과 영호풍의 난을 이유로 강족들과 화친합니다. 새롭게 사령관이 된 사마준도 군사를 키우는데 열중했습니다.

독발수기능은 주변의 이민족들과 연맹해 20여만으로 세력을 키웠습니다.

 

이후 크고 작은 전투가 지속되었습니다.

 

277년 사마준은 평로호군 문앙에게 양주, 진주, 옹주의 군사를 이끌게 하여 독발수기능을 공격했습니다. 선비족 20만 여명이 항복했고 선비족 연맹은 약해졌습니다.

 

선비족을 격파한 공을 인정받은 문앙은 동이교위가 되고 가절을 받았습니다. 문앙이 사마염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문앙이 싫었던 사마염은 다른 일을 빌미로 삼아 문앙의 관직을 빼앗았습니다.





죽음

291년 사마요는 황후 가남풍의 명령으로 당시 서진의 실권자였던 양준 일파를 숙청했습니다. 사마요는 문앙을 양준 일파를 몰았고, 문앙은 삼족이 멸족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마요

사마요의 아버지는 낭야왕 사마주, 어머니는 제갈탄의 딸로 제갈탄의 외손자였습니다.

문앙의 항복이 수춘성 함락의 원인이 되어 제갈탄이 죽었고, 오나라에 인질로 보내졌던 제갈정은 오나라가 멸망한 후 초야에 묻혀 지내다가 죽은 일로 사마요는 문앙에게 원한이 있었습니다.

제갈탄이 문앙의 아버지 문흠을 처형했으니 자신의 어머니 일족에게 복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국지연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문앙은 8척 장신의 소년 장군으로 동편과 창의 명수로 등장합니다. 

삼국지 후반기에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장수로 조운과 견준 시까지 등장합니다.

위군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사마사의 병세가 악화되었고, 아버지 문흠이 세상을 떠난 후 사마소에게 항복합니다. 사마소는 문앙을 죽이려고 하다가 종회의 조언을 받아들여 항복을 받아들입니다.

삼국지연의는 삼국통일 이후 시점에서는 다루지 않기 때문에 제갈탄의 난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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