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왕기 (공여 또는 공석)

삼국지 왕기 (공여 또는 공석)

 

왕기는 동래군 출신으로 자는 공여(孔璵) 또는 공석(孔碩)입니다.

왕기는 이름이 같은 위나라의 장수 왕기(백여)와 왕기(공여 또는 공석) 2명이 있었습니다.

많은 기록이 있는 장수는 아니지만 고구려와 연관이 있어 관심이 가는 장수입니다.



 

<출처 - https://michigan358.blog.me/221230955390>





요동의 공손연 

요동의 공손연은 반 독립 세력을 구축했지만 자신의 아버지인 공손강처럼 위나라에 복종했습니다.

 

234(동천왕 8) 위나라는 요동의 동쪽에 있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화친했습니다.

고구려는 위나라와 화친하고 요동의 공손연과 대치했고, 요동의 공손연도 위나라에 복종하고 고구려와 대치했습니다.

 


237(동천왕 11) 공손연은 지리적 이점을 가진 요동의 세력을 기반으로 위나라에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위나라의 황제 조예는 유주자사 관구검에게 오환족, 선비족을 이끌고 공손연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관구검은 공손연의 저항으로 요수에서 발이 묶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장마철이 되면서 요하가 범람하기까지 했습니다.

공손연이 위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본 고구려의 동천왕은 위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관계를 돈독하게 했습니다.

 


238(동천왕 12) 공손연은 연호를 소한으로 하고 연왕을 자칭했습니다.

위나라의 황제 조예는 사마의에게 요동 정벌을 명합니다. 사마의는 관구검의 부대를 휘하에 넣고, 고구려에 사자를 파견하여 양쪽에서 협공을 노렸습니다.

고구려 동천왕은 주부와 대가들을 보내 공손연을 협공했습니다.

공손연은 비연을 대장으로 삼아 요수에서 방어했습니다.

 

사마의는 남쪽으로 강을 건너는 척하고, 북쪽에서 강을 건너 양평을 노렸습니다.

공손연군의 비연은 양조를 선봉으로 삼아 위군을 추격했지만, 하후패와 하후위 복병에 당하고 말았습니다.

위군이 양평에 인접하자 비연은 총공격을 시도했지만, 호준에게 격파당하고 전사했습니다.

 

위군은 양평성을 포위했고, 결국 함락했습니다.

공손연은 아들 공손수와 함께 도망치다가 잡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구려

고구려 입장에서 요동의 공손연이 멸망하면서 골칫거리가 사라졌지만, 다른 한편으로 완충지가 사라져 위나라와 충돌하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마의가 공손연을 토벌한 이후 왕기는 궁준, 유무 등과 함께 고구려의 영토를 공격하여 현도군 태수가 되었습니다.

 


242(동천왕 16) 동천왕의 신하 득래는 요동으로 진출하기 위해 위나라의 선안평을 차지하고 위나라에 맞서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동천왕은 득래의 말을 듣지 않았고, 득래는 탄식하며 음식을 먹지 않고 아사했습니다.

 


왕기는 관구검을 도와 고구려를 공격했습니다.

동천왕은 비류수 양구에서 그들을 격파했습니다.

관구검은 동부여에게 군량을 제공받고, 고구려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험한 지형으로 공격에 실패하고 맙니다.

 

 


244왕기는 관구검과 함께 반격에 나섰습니다.

고구려는 주력에 피해를 입고 동천왕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고구려의 수도 환도성은 험한 산세로 공략하기 어려웠습니다.

관구검은 등애가 험한 산세를 뚫고 촉을 함락한 것처럼, 험한 산로를 행군하여 환도성을 기습하여 함락했습니다.

관구검은 왕기를 보내 동천왕을 추격하게 했습니다.

 


동천왕은 남옥저로 도망치다가 죽령에 이르렀습니다. 동부의 밀우는 죽음을 각오하고 위군을 상대했습니다.

동천왕이 남옥저에 도달했지만 위군을 추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동부의 유유가 계책을 냈습니다. 유유는 거짓으로 항복하여 목숨을 바쳐 위나라의 장수를 죽였습니다.

(이때 유유가 죽인 인물인 왕기라고 하는데, 전쟁 이후 왕기의 행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왕기군의 선봉장이 죽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위군은 혼란에 빠졌고, 동천왕은 세 갈래로 위군을 공격했습니다. 위군은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낙랑에서 퇴각했습니다.

 

247왕기는 대방군 태수로 지냈습니다. 야마타국의 히미코가 구나국과 불화로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기는 그들에게 화해를 권유했습니다.

 

왕기는 이후 천수태수를 맡았습니다.

 

 

263년 등애가 촉을 정벌할 때 왕기는 부장으로 참전하여 견홍과 함께 면죽관을 함락했습니다.

등애가 성도에 입성하자 왕기도 다른 장수들과 함께 익주의 각 군의 태수로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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