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염행

삼국지 염행

 

염행은 양주 금성군 출신으로 자는 언명(彥明)입니다. 그에 관한 기록은 <위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략 - 위나라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 저자는 어환, 이후 청나라 시대 왕인후가 집본을 편찬, 장붕일이 다시 편집)

 


한수를 따르다

염행은 젊어서부터 건장해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소장이 되어 후한 말 양주의 군벌이었던 한수를 따랐습니다.

 

 


마초를 위기에 몰아넣다

한수는 친밀하게 지내던 마등과 사이가 나빠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등이 한수를 공격했고, 한수는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와 마등의 처자식을 해쳤습니다. 조조는 종요를 보내 둘을 설득하여 화해하게 했습니다.

 

건안(196~220) 초 한수와 마등의 싸움에서 염행은 마등의 아들 마초와 겨뤘습니다. 염행이 마초를 찔렀는데 모가 부러지자, 부러진 모로 마초의 목을 쳤습니다. 마초는 거의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조조에게 사신으로

건안 14(209) 한수는 조조에게 사신으로 염행을 보냈습니다. 조조는 염행을 후하게 대우했고 표를 올려 건위태수에 임명했습니다. 염행은 부친을 숙위시켜달라고 청했습니다.

(숙위 - 볼모로 가서 머물던 일)

 

염행은 한수에게 돌아와 조조의 말을 전하며 그를 설득했습니다.

염행 군을 일으킨 지 30여년, 백성과 병사들은 피폐하고, 지형은 협소하니, 조조에게 귀부해야합니다. 저의 부친을 경사로 가도록 했으니, 장군 또한 자식 한 명을 보내 다른 뜻이 없음을 보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염행의 말을 들은 한수는 상황을 더 보다가 결정한다고 답했습니다.

후일 한수는 염행의 부모님과 함께 자식을 보냈습니다.

 

 


210년 한수는 조정의 명을 받고 무위태수 장맹을 토벌했습니다. 염행은 본거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조와 전쟁 반대 

211년 마초는 관중십장(서량 지방에서 활동하는 10명의 태수, 자사)과 함께 조조에 대항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염행은 한수에게 마초와 연합하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한수는 마초에게 가담했습니다.

 

마초군과 조조군은 동관 일대에서 전투를 했습니다.

 

한수와 조조가 회담하는 자리에서 염행은 한수의 호위를 맡았습니다. 조조가 염행에게 말했습니다.

조조 효자가 되게나.”

 

 

마초군과 조조군의 전쟁은 결국 조조가 승리했습니다. 조조는 한수의 자손들을 처형했습니다. 염행이 한수를 말렸다는 사실을 알고 염행의 아버지는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조조는 이간책으로 염행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염행의 부친이 처형당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한수는 흔들리는 염행의 마음을 굳히기 위해 자신의 어린 딸과 염행의 결혼을 추진했습니다. 염행은 한수를 말을 따랐고, 조조는 염행을 의심했습니다.

 


조조에게

한수는 염행에게 서평군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조조의 의심으로 초조해진 염행은 결국 한수를 공격했습니다. 패배한 염행은 조조에게 도망쳤습니다. 조조는 의심을 거두고 표를 올려 염행을 열후에 봉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