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비의
비의는 형주 강하군 맹현 출신으로 자는 문위(文偉)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백인(어머니의 조카)에게 의탁했습니다. 백인의 고모가 익주목 유장의 어머니였는데 유장이 사자를 보내 백인을 만나게 되었고 비의는 백인을 따라 촉으로 유학을 했습니다.
유비가 촉을 평정했을 때 비의는 익주 땅에 머물며 여남의 허숙룡, 남군의 동윤과 이름을 나란이 하며 명성이 있었습니다.
수레에 관련된 일화
허정이 아들을 잃는 일이 일어나, 동윤과 비의는 장지로 출발했습니다. 동윤이 아버지 동화에게 수레를 부탁했는데 동화는 뒤쪽이 열려있는 녹거(수레)를 주었습니다. 동윤은 수레가 타기 어렵다고 하며 난색을 표했지만, 비의는 별다른 기색 없이 먼저 앞쪽으로 올라탔습니다.
동윤과 비의가 장지에 도착했을 때 제갈량을 포함한 여러 귀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화려한 수레를 본 동윤의 안색은 편안하지 못한 반면 비의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수레를 몰았던 사람에게 상황을 듣게 된 동화는 동윤에게 말했습니다.
동화 “나는 항상 너와 문위(비의)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이후로 생각이 분명해졌구나.”
221년 유비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유선을 태자로 세워졌습니다. 동윤과 비의는 함께 태자사인(태자를 가까이 모시는 시관)으로 되었다가 서자로 승진했습니다.
223년 유비가 세상을 떠난 후 유선이 제위에 오르자 비의는 환문시랑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제갈량의 총애
승상 제갈량이 남정에서 돌아왔을 때 많은 관료들은 수 십리까지 나와 그를 맞이했습니다. 대부분의 관료들이 비의보다 나이나 관위가 위였지만 제갈량은 특별히 명해 비의를 수레에 함께 태웠습니다. 이후로 비의를 가볍게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나라에 사자로 파견
제갈량은 남정에서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비의를 소신교위로 임명하고 오나라의 손권에게 사자로 보냈습니다. 손권은 언변이 좋으며 익살스러웠고, 그의 신하인 제갈각, 양도 등은 재능이 뛰어나고 결단성이 있고 변설(옳고 그른 것을 가려 설명함)에도 능했습니다. 비의는 그들을 만나 의를 따르며 바른 말을 하고 이치에 맞게 물음에 답했습니다. 손권은 비의에게 감탄하여 말했습니다.
“그대는 천하의 숙덕(착하고 아름다운 덕행)을 갖춘 사람으로 틀림없이 촉의 중신이 될 것이라서 오나라로 여러 번 오지 못할까 걱정이오.”
손권과의 일화
손권은 매번 따로 좋은 술을 따라 비의에게 대접했습니다. 그가 취한 것을 보고 국사에 관해 물었습니다. 비의는 술에 취했다고 말하며 물러나서는 질문 받은 바를 순서대로 적고 사안마다 조목조목 답변하여 놓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비의는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시중으로 승진했습니다.
제갈량은 한중에 주둔하고 있을 때 유선에게 청하여 비의를 참군으로 삼았습니다.
비의는 오나라에 자주 사자로 파견되었습니다.
230년 비의는 제갈량의 북벌이 진행되는 동안 중호군으로 전임했다가 사마로 임명되었습니다.
위연과 양의
위연과 양의는 서로 싫어하여 한자리에 있을 때마다 논쟁이 있었는데 심지어 위연이 칼을 뽑아 양의를 겨누는 일도 있었습니다. 비의는 그들 사이를 중재하며 간언했고, 시비를 구분하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위연과 양의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음에도, 한 나라에서 그들의 능력이 잘 발휘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갈량의 존재도 있었지만 비의의 중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위연과 양의는 제갈량이 세상을 떠난 뒤 대립을 하다가 위연이 분노에 눈이 멀어 같은 편을 공격하는 일을 저지르고 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제갈량이 세상을 떠난 후 비의는 후군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중군사에 임명된 양의는 장완이 상서령으로 임명되자 불만이 터졌습니다. 양의는 비의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승상(제갈량)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만약 군을 들어 위씨에게 갔다면 내 처지가 이처럼 초라해졌겠소! 이제와 후회해봤자 되돌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양의의 위험한 발언을 들은 비의는 유선에게 상주했고 양의는 파직되어 한가군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를 가서도 비방하는 말을 하던 양의는 결국 군에 의해 잡아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얼마 뒤 비의는 장완을 대신해서 상서령이 되었고, 장완이 한중에서 부현으로 돌아간 뒤 대장군 녹서상사에 올랐습니다.
비의의 재능
비의는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공무가 매우 많았지만 바둑과 장기를 즐기고, 손님을 만나 식사를 나누고 먹고 마시며 노는 시간까지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의의 후임으로 동윤이 상서령이 되었는데 동윤은 열흘 만에 일이 잘못되거나 지체되는 것을 겪고 말았습니다. 동윤은 사람의 재능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인가 하며 한탄했습니다.
내민과의 일화
244년 위나라의 조상이 한중을 공격하여 흥세산에 도착했습니다. 유선은 비의에게 부절을 내려 왕평을 도와 위나라의 공격을 막도록 명했습니다. 광록대부 내민이 비의에게 가서 작별인사를 하며 바둑을 두자고 청했습니다. 긴급한 문서가 날아들며 위급한 상황에서 수레와 말을 정비하는 일이 끝났지만 비의는 내민과 함꼐 바둑을 두며 피곤한 기색이 없었습니다.
내민은 “잠시 그대를 실험해 보았을 뿐입니다. 그대는 확실하게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니 반드시 적을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비의는 후퇴하고 있는 적을 공격하여 공을 세웠고 성향후에 봉해졌습니다.
장완이 주목 자리를 굳게 사양하지 비의가 익주자사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비의의 공적과 명성은 장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245년 장완이 세상을 떠난 후 병권을 이어받았고, 248년 완평이 세상을 떠난 후 한중에서 주둔했습니다. 유선은 장완과 비의를 매우 신뢰하여 그들이 먼 곳에 있더라도 포상과 형벌은 그들의 자문을 얻어 결정했습니다.
251년 비의는 성도에 돌아왔을 때 점쟁이가 도읍에 재상 자리가 없다고 말하자 다시 한수로 가서 주둔했습니다.
252년 유선은 비의에게 부서를 개설하라고 명했습니다.
죽음
253년 새해 초에 큰 모임이 열렸습니다. 위나라에서 항복한 곽순이 칼을 품고 그 자리에 나왔습니다. 곽순은 유선을 해하려고 했지만 경비가 삼엄하여 쉽지 않았습니다. 비의는 새로 귀순한 사람에게도 허물이 없이 대해 너무 경계에 소홀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곽순은 경계가 삼엄한 유선 대신 비의로 목표를 바꿨고 만취한 비의는 곽순에게 해를 입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비의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 비승이 뒤를 이었고 황문시랑이 되었습니다. 비승의 동생 비공은 공주와 결혼했고, 비의의 장녀는 유선의 비가 되었습니다.
성격
비의는 천성이 겸손하고 검소하여 재물에 욕심이 없었습니다. 자식들에게 포의를 입히고 소식하도록 하며 집을 나설 때 수레와 말이 뒤따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름
<삼국지 정사>, <자치통감>에서는 비의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비위로 잘못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지연의>가 사람들에게 더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비위로 알려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