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황보숭 ( ? ~ 195년) 후한 말
황보숭은 양주 안정군 조나현 사람으로 자는 의진(義眞), 성은 황보씨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황보절로 안문태수였고 큰아버지는 도요장군 황보규였습니다. 황보숭은 어렸을 때부터 학문과 무예에 뜻이 있어 독서, 궁술, 마술을 즐겼습니다.
황보숭은 처음에 효렴, 무재에 천거되어 낭중에 임명되었고 패릉, 임분의 현령으로 승진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상을 치르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영제는 공거(수레)를 보내 그를 의랑으로 임명했고 북지태수로 승진했습니다.
황건적의 난
장각은 대현양사라고 칭하며 태평도를 일으켰고 수많은 신자들을 모았습니다. 184년 장각은 여러 방들을 황색 두건을 쓰고 일제히 봉기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황건적이라고 불렸고 이 난은 황건적의 난이라고 불렸습니다. 장각은 천공장군, 동생 장보는 지공장군, 막내 장보는 인공장군이라 칭하며 황건적을 이끌었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난으로 전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조정에서는 각 주, 군에 군비를 정비하도록 했고 장수들을 불러들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황보숭은 당고의 금(후한 말기 환관들이 환제를 부추겨 일어난 탄압 사건)으로 쫓겨난 사람들을 등용하고 마구간의 말들을 병사들에게 나눠주자고 주장했습니다. 영제는 황보승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황보숭을 좌중랑장으로, 주준을 우중랑장으로, 노식을 북중랑장으로 임명하고 병력들을 통솔하게 했습니다.
황보숭과 주준은 함께 영천의 황건적을 토벌했습니다. 하지만 주준이 이끄는 군대가 황건적의 장수 파재와 싸워 패하면서 황보숭이 있던 장사가 포위당하고 맙니다. 황보숭군의 병사보다 파재군의 병사수가 많았기 때문에 병사들은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황보숭은 화공을 사용해서 황건적을 공격했고 놀란 적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영제가 보낸 기도위 조조가 병사들을 이끌고 도착했고 황보숭은 조조, 주준와 함께 적을 대파하고 공을 인정받아 도향후에 봉해졌습니다.
황보숭은 도망친 파재를 쫓았고 서화에서 그들과 싸워 격파했습니다. 파재군은 항복하거나 도망쳤고 그 부근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조정에서는 황보숭에게 동군을 공격하도록 했고 주준에게 완성의 황건적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황보숭은 창정에서 황건적 복사가 이끄는 군대를 격파하고 복사를 포로로 잡았습니다.
노식은 장각이 이끄는 황건적의 주력군과 싸우고 있었는데 병력 수에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전연승을 거두며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감찰을 나온 환관 좌풍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모함을 당하고 파면 당하고 맙니다. 파면된 노식의 후임으로 동탁이 왔는데 황건적의 역공에 패하면서 조정은 중원 지역의 토벌을 성공한 황보숭을 후임으로 부임시킵니다.
장량 격파
황보숭은 장각, 장보의 동생 장량과 광종에서 싸웠습니다. 황보숭은 장량과 싸워서 패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며 기회를 살피다가 적이 방심한 사이에 야습을 했습니다. 야습은 성공했고 장량의 부대를 대파하고 장량을 처형했습니다. 또 장각이 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고 관을 부수고 수급을 낙양으로 보냈습니다.
장보 격파
장각의 동생 장보는 장각, 장량이 죽은 뒤에도 곡양에서 농성했고 황보숭은 거록태수 곽전과 함께 장보를 공격했습니다. 황보숭과 곽전은 장보군을 격파하고 장보를 처형했습니다. 수많은 공을 세운 황보숭은 좌거기장군, 기주목에 임명되었고 괴리후로 봉해지며 두 개의 현에서 식읍 8천호를 받았습니다.
기주목이 된 황보숭은 굶주린 기주의 백성들에게 일 년간의 조세를 나눠주기를 청했고 황제는 이를 허락했습니다. 백성들은 황보숭의 은혜에 감사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병사들의 신뢰를 받다.
황보숭은 병사들을 이끌 때 병사들의 진을 치고 야영하는 천막이 다 쳐진 후에야 숙영했고 병사들이 식사를 끝낸 후에야 자신이 식사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병사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황보숭의 부하 중에 뇌물을 받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황보숭은 그들을 탓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금품을 내주었습니다. 뇌물을 받았던 자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죄를 뉘우쳤고 어떤 자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신도현령 염충은 황보숭을 찾아와 기세와 명성이 높은 황보숭이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열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황보숭은 충성심과 도리를 지키는 마음으로 염충의 말을 거절했습니다.
변장, 한수의 난
184년 변장과 한수는 양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황보숭은 중상시 장양의 뇌물 요구를 거절하고 중상시 조충의 법을 어긴 저택을 고발한 일이 있었습니다. 185년 장양과 조충은 앙심을 품고 있다가 황보숭을 모함했고 황보숭은 좌거기장군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식읍 육천호가 줄어 이천호가 되었습니다.
마등은 한수의 세력이 커지자 한수에게 가담했고 한수와 마등은 적도의 왕국을 주군으로 추대했습니다. 188년 왕국은 군대를 이끌고 진창을 포위했고 조정에서는 황보숭과 동탁에게 4만의 병사를 주고 그들을 토벌하게 했습니다.
통탁과의 대립
동탁은 때를 놓치면 안 된다며 빠르게 가면 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황보숭은 진창은 작은 성이지만 수비가 견고해서 버틸 수 있을 것이며 천천히 상황을 살피자고 주장하며 동탁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89년 왕국은 팔십여 일간 진창을 포위하고 함락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회군하려 했습니다. 황보숭은 이때를 노려 출진해 왕국군을 공격했습니다. 동탁은 궁하고 돌아가려는 자를 쫓아서는 안 된다며 추격을 멈췄습니다. 황보숭은 전에 공격하지 않은 것은 적의 날카로운 기세을 피하려는 것이었고 지금 공격하려는 것은 그들이 약해지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라며 동탁을 후방에 남겨두고 왕국군을 공격해 격파했습니다. 동탁은 황보숭에게 앙심을 품었고 둘의 사이는 멀어졌습니다. 한수는 패배하고 돌아온 왕국을 참수했고 이후 반란군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무너졌습니다.
동탁은 군대를 사병화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고 조정에서는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관직에 임명하며 불러들였지만 동탁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황보숭의 조카 황보력은 황보숭에게 명령을 따르지 않는 동탁을 제거하자고 설득했습니다. 황보숭은 조정의 명령이 없이 함부로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조정에 동탁의 일을 물었습니다. 영제는 동탁을 책망하며 동탁에게 군대를 황보숭에게 넘기라고 명령했지만 동탁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위기에 빠지다.
이후 동탁은 대장군 하진의 요청을 받아들여 낙양 근처에 주둔하다가 혼란을 틈타 권력을 잡게 됩니다. 190년 동탁은 황보숭을 성문교위로 임명하면서 불러들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장사 양연은 황보숭에게 동탁을 공격하자고 했지만 황보숭은 거절하고 낙양으로 향했습니다. 조정에 들어간 황보숭은 감옥에 갇혀 죽을 위기에 빠졌습니다. 황보숭의 아들 황보견수는 급히 낙양으로 와서 동탁을 책망하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습니다. 동탁은 마음이 움직여 황보숭을 사면했고 이후 황보숭은 의랑에 임명되고 어사중승으로 승진했습니다.
죽음
192년 왕윤과 여포에게 동탁이 죽고 황보숭은 정서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거기장군으로 승진했다가 태위로 임명되었지만 겨울에 별동별이 떨어져 면직되었습니다. 다시 광록대부에 임명되고 태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195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