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장각 ( ? ~ 184년)
장각은 기주 거록군 출신입니다. 그는 우길의 태평청령서를 기초로 삼아 태평도를 일으켰습니다. 장각은 스스로 대현량사(大賢良師)라고 칭하며 포교했고 빠른 속도로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장각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고 혼란과 부정부패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그를 따르며 규모가 점점 커졌습니다.
장각은 36개의 방을 조직했고 신도의 숫자에 따라 대방, 소방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후한 정부는 위협을 느끼고 탄압하며 해산 명령을 내렸지만 오히려 태평도의 조직력을 강화시키고 반권력적인 성격을 두드러지게 했습니다.
蒼天已死 창천이사
黃天當立 황천당립
歲在甲子 세재갑자
天下大吉 천하대길
푸른 하늘이 죽고 누런 하늘이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장각은 한을 뜻하는 창천 대신 황천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갑자년 184년에 봉기를 준비했고 마원의를 보내 낙양의 환관 봉서와 서봉을 꾀어내 호응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발각되어 마원의, 봉서 등이 처형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장각은 계획이 틀어지자 전국의 있는 방에 명령을 내려 봉기하게 했습니다. 봉기한 사람들은 머리에 누런 두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황건적으로 불렸고 장각은 천공장군으로 장각의 동생 장보는 지공장군, 장량은 인공장군의 자리에 올라 황건적을 지휘했습니다.
전국에서 일어난 황건적들은 거대한 규모로 8주에 영향을 끼칠 정도였고 후한 영제는 하진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노식, 황보숭, 주준 등에게 황건적을 토벌하게 했습니다. 또 조조, 손견 등 많은 군웅들이 황건적을 토벌했습니다.
죽음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해에 장각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각의 죽음으로 황건적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고 동생 장량이 뒤를 이어 이끌었지만 여러 전투에서 패배하며 전사합니다. 장보는 장각이 병사한 뒤 광종을 지키다가 황보숭을 물리쳤지만 방심하고 있다가 야습을 당해 죽고 맙니다. 지도자들을 잃은 황건적은 무너지고 패배했습니다. 황보숭은 장각의 관을 부수고 수급을 낙양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황건적의 잔당들은 계속해서 저항했고 뒤를 이어 봉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이 난을 계기로 군웅들이 힘을 겨루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장각은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남화노선에게 태평요술서라는 책을 받게 되어 도사가 됩니다. 장각은 태평도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며 대현량사라고 칭하고 이후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고 난 도중에 세상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