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위연 ( ? ~ 234년) 유비 유선 촉나라
위연은 형주 의양군 사람으로 자는 문장(文長)입니다. 위연은 유비의 밑에서 부곡(군대 병사)으로 있으면서 유비가 촉을 공격할 때 함께하며 많은 공을 세워 아문장군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한중 수비 임무를 맡다.
219년 유비가 한중왕의 자리에 오르고 한중 방면의 수비를 담당하는 장수를 선택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장비 본인도 내심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위연을 선택해 독한중 진원장군으로 임명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유비는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위연에게 물었습니다.
유비 “경은 이 중임에 어떻게 임할 것이오?”
위연 “만약 조조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온다면 대왕을 위해 이를 막을 것이고, 수하 장수가 10만 병사로 쳐들어온다면 대왕을 위해 삼켜버릴 것입니다.”
유비는 위연을 칭찬했고 다른 사람들도 위연의 용감한 발언에 그를 인정했습니다.
221년 유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위연은 진북장군으로 승진했고 223년 유비가 죽고 아들 유선이 제위에 오르며 위연은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227년 제갈량은 북벌을 준비하며 한중에 주둔하면서 위연을 독전부, 영 승상사마, 양주자사로 임명했습니다.
제갈량에게 계책을 거절당하다.
위나라의 하후무가 안서장군이 되어 장안을 수비할 때 회의에서 위연이 제갈량에게 말했습니다.
위연 “하후무는 겁이 많고 꾀가 없다고 합니다. 제게 정예병 5천과 군량을 운반할 군사 5천을 주신다면 포중을 나가 진령을 돌아 동쪽으로 진군하여 자오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10일도 되지 않아 장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장안을 기습하면 하후무는 배를 타고 도망칠 것이고 어사와 경조태수만 남을 것입니다. 식량 창고와 도망친 백성들의 식량으로 군량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위나라의 군대가 모이는데 20일여 일은 걸릴 것이니 그 사이 공(제갈량)께서 야곡을 통해 장안에 도착하는데 충분합니다. 이 방법으로 일거에 함양 서쪽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정적이고 탄탄한 계획을 선호하는 제갈량은 위연의 계획이 위태롭다고 생각해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위연은 제갈량이 겁이 많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한탄했습니다.
수많은 공을 세우다.
230년 위연은 오의와 강중으로 들어가 양계에서 위나라의 비요, 곽회와 싸웠습니다. 위연은 그들을 격파하며 공을 세워 전군사, 정서대장군 가절로 승진했고 남정후로 봉해졌습니다.
231년 제갈량군이 기산을 포위했을 때 위나라의 사마의가 제갈량과 맞붙었습니다. 제갈량은 위연과 오반, 고상을 함께 보내 사마의군을 격파했습니다.
흉몽
234년 제갈량은 위연을 선봉으로 삼고 마지막 북벌에 나섰습니다. 위연은 어느 날 머리 위에서 뿔이 나는 꿈을 구고 조직에게 꿈의 내용을 상담했습니다. 조직은 위연에게 기린은 뿔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싸우지 않고도 적을 격파한다는 징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角(뿔 각) 글자 위에는 刀(칼 도)가 있고 아래 用(쓸 용)이 있으니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말했습니다.
내분
마지막 북벌 중 병이 깊어진 제갈량은 양의, 비의, 강유를 불러 자신이 죽은 뒤 퇴각하라는 명령과 함께 위연에게 최후방을 맡게 하고 강유를 위연 바로 앞에 있게 하면서 혹시 위연이 퇴각 명령을 따르지 않더라도 위연군을 놔두고 바로 출발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양의는 몰래 퇴각을 준비하며 비의에게 위연의 의사를 살피게 했고 비의는 위연을 찾아가 의견을 물었습니다.
위연 “승상이 비록 죽었지만 나는 건재하오. 승상부의 측근들은 시신을 가지고 돌아가 장례를 치르고 나는 제군을 이끌고 적을 공격해야 마땅하오. 어찌 한 사람이 죽었다고 천하의 일을 그만둘 수 있겠소? 위연이 어떤 사람인데 양의의 지휘를 받아 후방을 맡는 장수가 되겠소?”
위연은 돌아갈 부대와 남을 부대를 나누고 장수들에게 알리라고 했고 비의는 자신이 양의를 설득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양의 등은 제갈량이 남긴 명령에 따라 차례대로 퇴각했고 위연은 상황을 살필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한 위연은 양의가 출발하기 전에 길을 앞질러 가서 잔도(험한 벼랑의 다리)를 태웠습니다. 위연과 양의는 서로 반역했다고 조정에 표를 올렸고 유선은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동윤과 장완은 양의 편을 들며 위연을 의심했습니다.
양의는 나무를 베어내며 길을 뚫어 진군했고 위연을 따라잡았습니다. 위연은 포곡을 점거하고 양의군을 공격했습니다. 양의군에 있던 왕평은 "승상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너희들은 감히 이처럼 행동하느냐!" 라며 위연군을 꾸짖었고 위연군의 병사들은 위연에게 잘못이 있음을 알고 흩어졌습니다.
죽음
위연은 자식들과 함께 한중으로 도망쳤고 양의는 마대를 보내 위연을 추격하게 했습니다. 결국 위연은 마대에게 붙잡혀 참수당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의는 위연의 수급을 보고 짓밟으며 ‘천한 놈아, 다시 한 번 못된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반란의 죄를 쓴 위연의 삼족이 멸해졌습니다.
<위략>에는 다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갈량의 병이 깊어지자 위연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는 지키기만 하고 공격하러 오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자신의 사무를 대행하게 했습니다. 제갈량이 죽은 뒤 위연은 은밀하게 시신을 가지고 떠났고 포구에 도착에서 초상이 난 것을 알렸습니다. 위연과 사이가 좋지 않던 양의는 위연이 군권을 잡게 되자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했고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로 투항하려 한다고 누명을 씌우고 위연을 공격했습니다. 위연은 투항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도망쳤고 결국 추격당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연은 사졸들을 기르는 능력이 뛰어나고 매우 용맹하고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하지만 잘난 체하고 겸손함이 없어 다른 사람들을 그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양의는 위연의 행동에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었고 물과 불처럼 다투며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은 양의의 재주, 위연의 용맹함을 아껴서 두 사람이 화목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위연은 형주의 유표의 부하로 등장합니다. 유표가 죽고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려고 하자 위연은 채모, 문빙과 싸우며 유비를 불러들이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형주에 있을 수 없게 된 위연은 장사태수 한현에게 의지합니다.
손권, 유비는 적벽 전투에서 승리하고 형주를 공격합니다. 이때 관우가 장사를 공격했는데 황충과 관우의 싸움(서로 한 번씩 목숨을 살려줍니다.)으로 한현은 황충을 의심하고 감옥에 가둡니다. 황충이 처형당할 위기에 빠지자 위연은 반란을 일으키고 성문을 열어 유비에게 항복합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위연이 주군을 배반한 행동을 지적하며 반골의 상이라고 진언하지만 유비는 위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받아들입니다. 이후 위연은 수많은 전투에서 용맹하게 활약하며 오호대장군 다음가는 위치까지 오릅니다. 제갈량은 위연이 반골의 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무예와 용맹함이 필요했기 때문에 중용합니다.
제갈량은 위연에게 사마의를 유인하는 임무를 맡겨 둘 다 한꺼번에 죽이려는 계략을 짜기도 하지만 위연은 살아서 돌아왔고 제갈량의 마대의 착오가 있었다고 핑계를 대며 넘어가기도 합니다.
병으로 쓰러진 제갈량은 자신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기도를 하면서 절대 방해를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위나라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위연은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제갈량이 있는 장막으로 들어갔고 제갈량의 기도는 실패합니다. 분노한 강유는 위연을 베려고 하지만 제갈량은 하늘의 뜻이라며 강유를 말립니다.
제갈량이 죽고 위연은 반란을 일으키고 양의는 제갈량이 죽기 전에 남긴 주머니를 열어 적혀있는 지시대로 행동합니다. 양의는 위연에게 가서 “누가 나를 죽일 수 있는가?” 라고 세 번 말하면 군권을 넘겨주겠다고 말합니다. 위연은 그 말을 세 번 외쳤고 제갈량의 지시를 받고 위연의 밑에 있던 마대가 위연을 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