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하제
삼국지 하제 ( ? ~ 227년) 손책, 손권 오나라
하제는 회계군 산음 사람으로 자는 공묘(公苗)입니다. 하제는 젊었을 때 군의 관리로 임명되어 섬현의 장을 대행하고 있었습니다. 현의 관리 사종이라는 사람이 경솔하고 간사한 행동을 해서 하제가 그를 처벌하려고 하자 밑에 있던 주부가 하제에게 사종은 산월족과 친한 현의 호족이기 때문에 함부로 처벌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제는 이 말을 듣고 노여워하며 사종을 참수했고 사종의 무리들이 서로 연합해 천여 명의 병사들이 현을 공격했습니다. 하제는 성문을 열고 관리, 백성들과 함께 싸우며 대승을 거두었고 그의 명성은 산월족에게까지 널리 퍼졌습니다.
이후 태말현, 풍포현의 백성들이 모반을 일으키자 하제는 태말현의 장으로 임명되어 주동자들을 잡아들이고 백성들을 보호하며 한 달 만에 완전히 평정했습니다.
손책
196년 손책이 회계태수 왕랑을 몰아내고 회계군을 차지했을 때 하제는 효렴으로 천거되었습니다. 왕랑은 동야로 도망치고 후관의 장이었던 상승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손책은 영년현의 장이었던 한안을 임시로 남부도위로 임명해 상승을 공격하게 했고 하제를 영년현의 장으로 임명했습니다.
한안이 상승에게 패배하자 손책은 하제에게 임시로 남부도위의 일을 겸임하게 했고 하제는 상승을 설득하여 항복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항복을 원하지 않던 장아와 첨강은 상승을 해치고 장아는 무상장군, 첨강은 회계태수로 자칭했습니다. 하제는 반란군 수에 비해 자신의 병사가 적었기 때문에 토벌하기 쉽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병사들을 쉬게 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이제이
장아와 사위 하웅이 세력 다툼을 벌이자 하제는 산월족을 끌어들여 양쪽에게 동시에 항쟁하도록 했고 그들은 서로 의심하고 사이가 나빠져 서로 싸우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하제는 상대방이 충분히 약해졌다고 생각해서 병사를 이끌고 진군하여 한 번의 싸움으로 장아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 첨강의 무리는 두려워하며 항복했습니다.
손권
200년 손책이 죽고 동생 손권이 뒤를 이었습니다. 203년 건안, 한흥 남평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하제는 병사를 이끌고 건안으로 가서 도위부를 세웠습니다. 적들은 홍명, 홍진, 원어, 오면, 화당 등 다섯 명이 각 1만을 통솔하며 한흥에, 오오가 6천을 통솔해 대담에, 추림이 6천을 통솔하며 개죽에 주둔하였고 이들은 공동으로 여간을 공격했습니다.
하제는 적들의 수에 비해 병사가 적었기 때문에 깊숙이 진군했다가 후원 부대가 없으면 퇴로가 끊기게 될 것을 염려해 송양현의 장 정번에게 여간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정번은 하제의 지휘를 받는 것에 불만을 가져 명령을 거역했고 하제는 정번을 참수시키고 군기를 다잡았습니다.
하제는 병사를 나누어 여간을 지키게 하고 진군하며 홍명 등과 싸우며 연이어 적을 격파해 나갔습니다. 상대의 진지에 이르러 홍명을 참수하자 오며, 화당, 홍진, 어원이 항복했고 하제는 방향을 돌려 개죽을 공격하고 대담으로 진군했습니다. 이어서 대담에 있던 오오와 개죽에 있던 추림도 항복했습니다.
이번 싸움으로 하제는 1만의 병사로 많은 수의 반란군을 상대하며 6천여 수급을 얻고 이름 있던 장수들을 전부 체포했습니다. 또 현과 읍의 관소를 새로 세우고 공을 인정받아 평동교위로 임명되었습니다.
205년 손권은 하제에게 회계 남부의 상요를 토벌하게 했고 하제는 상요를 토벌하고 그곳을 분할해서 건평현을 만들었습니다.
이현 흡현 토벌
208년 하제는 위무중랑장으로 승진했고 단양군의 이현과 흡현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무강, 섭향, 동양, 풍포 네 개 향이 투항해왔고 하제는 표를 올려 섭향을 시신현으로 만들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흡현의 우두머리 김기가 1만을 통솔하며 안륵산에, 모감이 1만을 통솔하며 오료산에, 이현의 우두머리 진복과 조산 등이 2만을 통솔하며 임력산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임력산의 서쪽은 높은 절벽이고 길이 위험해 칼이나 방패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대가 높은 곳에서 돌을 떨어뜨리면 대항할 수 없어 천연의 요새였습니다.
하제는 군을 주둔시키며 직접 사방을 살피며 지형을 관찰한 뒤 철제 주살을 만들도록 시켰습니다. 민첩한 병사들을 모집해 밤중에 적들의 방비가 허술한 곳으로 가서 철제 주살을 던져 은밀히 산을 오르게 했습니다. 올라간 병사들은 삼베끈을 아래로 늘어뜨렸고 1백여 명의 병사가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산위에 오른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동시에 북을 울리고 피리를 불렀고 적들은 한밤중에 사방에서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울리자 상대의 대군이 올라온 줄 알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하제는 병사들을 이끌고 진복 등을 격파하며 7천 명의 수급을 얻었고 나머지에게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하제는 흡현을 나누어 신정현, 여양현, 휴양현을 만들었고 이, 흡 등 6개현이 신도군으로 신설되었습니다. 하제는 태수로 임명되었고 편장군의 직위를 더했습니다.
손권의 대우
211년 오군 여항현에서 낭치가 반란을 일으켰고 하제는 군을 이끌고 그들을 토벌한 뒤 여항현을 나누어 임수현을 신설했습니다. 하제가 손권을 만나 명을 받고 돌아가려고 할 때 손권이 나와 전행(술과 음식으로 송별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도록 했습니다. 손권은 하제에게 병거와 준마를 하사했고 송병연이 끝나 수레에 앉으면서 하제에게도 수레에 타라고 권했습니다.
하제는 정중하게 사양했지만 손권과 주위 사람들이 하제를 수레에 오르게 했고 손권은 길을 여는 병사들에게 군에서의 의식과 똑같이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손권은 웃으며 하제에게 ‘사람들은 마땅히 노력해야만 한다. 덕행을 쌓고 공을 쌓지 않았다면 이런 대우는 얻을 수 없다’ 라고 말했고 하제의 수레가 백여 보 떠난 뒤 손권은 돌아갔습니다.
예장 동부 토벌
213년 예장 동부의 팽재, 이옥, 왕해 등이 1만여 명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하제는 이들을 토벌하고 우두머리를 해치우고 나머지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항복한 이들 중에 건장한 자들은 선발해 병사로 만들고 남은 사람들의 현의 백성으로 만들었으며 분무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합비 전투
215년 손권군이 조조군의 합비를 공격했을 때 하제는 손권을 따라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합비 전투에서 장료, 이전, 악진의 활약으로 피해를 입고 역병까지 돌아 손권군은 퇴각을 결심합니다. 하제는 서성이 전투 도중 부상을 입어 창을 잃어버리자 병사를 이끌고 서성의 창을 되찾아 오기도 했습니다. 소요진 북쪽에서 손권이 장료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빠졌을 때 하제는 병사 3천 명을 이끌며 소요진 남쪽에서 손권을 맞이했습니다.
손권이 큰 배에 올라 장수들을 모아 연회를 열었는데 하제는 눈물을 흘리면 말했습니다.
“군주는 항상 몸을 중시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일은 거의 재앙에 이른 것으로 이 일을 평생의 훈계로 삼으십시오.”
손권은 하제의 눈물을 닦아주며 알겠다고 답했습니다.
파양 우돌 토벌
216년 파양의 우돌이 조조에게 인수(벼슬에 임명될 때 받는 관인의 끈)를 받아 능양현, 시안현, 경현의 호응을 얻어 오나라와 대립했습니다. 자제는 육손과 함께 우돌을 토벌하고 수천 명의 수급을 얻었습니다. 나머지 무리들과 단양의 세 현은 항복했고 8천 명의 병사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제는 안동장군으로 승진하고 산음후로 봉해졌으며 장강가에 주둔하여 부주 상류지역에서 환 지역까지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조휴와의 일화
222년 위나라의 조비는 오나라의 동구, 강릉, 유수 세 방향을 공격했습니다. 하제는 멀리서 왔기 때문에 늦게 도착해서 신시에 주둔하며 방어했습니다. 동구에 있던 여러 군대들이 폭풍을 만나 많은 병사를 잃으며 불리한 상황에 빠졌고 하제의 병력은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장수들이 하제에게 의지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제는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는데 특히 군사적인 일에 관련된 병기, 갑옷을 화려하게 했습니다. 타고 다니는 배의 노나 창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활과 화살도 상등품의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조휴의 군대는 하제의 화려한 군대를 보고 겁을 먹고 도망쳤습니다. 하제는 후장군으로 승진하고 서주목을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진종 토벌
진종은 희구를 지키는 오나라의 장수였는데 부하를 데리고 위나라로 투항했습니다. 223년 위나라에서 기춘태수로 임명된 진종은 안락을 습격해 그곳의 인질들을 탈취하려고 했습니다. 손권은 분노를 느껴 하제에게 미방, 선우단 등을 지휘해 기춘을 공격하도록 했고 결국 진종을 생포했습니다.
죽음, 자식들
주로 반란을 토벌하는데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던 하제는 22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제의 아들 하달, 하경은 모두 뛰어난 명성으로 훌륭한 장수가 되었습니다. 하경은 멸적교위를 지냈는데 엄격하고 은혜롭게 무리를 다스렸습니다. 하달은 기분에 의지해 일을 했고 위배되는 일이 많아 전공이 있어도 작위를 받지 못했지만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기를 귀하게 생각했으며 대담하고 강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