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전예

삼국지 전예 (171~252) 유비 공손찬 선우보 조조 조비 조예 조방

 

유비

전예는 유주 어양군 옹노현 사람으로 자는 국양(國讓)입니다전예는 유비를 따르다가 유비가 예주자사가 되었을 때 고향에 있는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했습니다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전예와 작별했습니다.

 


공손찬

이후 전예는 공손찬의 밑에 있었습니다공손찬의 수하였다가 배반하고 원소의 편이 된 왕문이 병사 만여 명을 이끌고 공격하러 왔을 때 전예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경은 공손에게 후대 받고도 떠났으니 여기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리라 여겼소하지만 다시 돌아와 공격하니 그저 배신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겠소무릇 작은 지혜를 가진 이라도 자기 것을 지키며 쉽게 내어주지 않는 법이며 나는 이곳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소어찌 속히 공격하지 않으시오?”

 

전예의 말을 들은 왕문은 부끄러워하며 돌아갔습니다공손찬은 전예에게 재능이 있는 것을 알았지만 중용하지 않았습니다.

 


선우보

공손찬이 멸망한 뒤 선우보가 사람들에게 추대되어 태수의 사무를 대행했습니다선우보는 평소 전예를 좋게 생각했고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전예를 장사로 임명하고 중용했습니다당시 원소조조 등 뛰어난 웅걸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우보는 누구를 따를 것인지 고민했습니다전예는 선우보에게 천하를 평정할 자는 조씨라며 조조를 따를 것을 권했고 선우보는 조조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조조

208년 조조가 승상이 되었을 때 전예는 승상공모연에 임명되고 이후 영음과 낭릉의 현령으로 있다가 익양태수의 자리까지 올랐고 가는 곳마다 잘 다스렸습니다.

 


오환토벌

218년 조조의 넷째 아들 조창이 이민족을 토벌하러 갈 때 전예를 상으로 삼아 함께 했습니다조창군이 역수 북쪽에 주둔할 때 상대는 복병으로 기병을 숨겨두었다가 조창군을 공격했고 조창군은 혼란에 빠졌습니다전예는 지형을 이용해 수레를 원진으로 만들어 그 안에서 궁노병들이 상대를 공격하게 했고 상대가 달아나자 그들을 뒤쫓아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후흠의 무리

이후 전예는 남양태수로 승진했습니다당시 남양군 사람인 후음이 모반을 꾀해 그 무리들이 산 속에 있어서 민심이 흉흉하고 큰 근심거리였습니다전예가 남양태수가 되기 전 태수는 후음의 무리 5백여 명을 붙잡아 조정에 표를 올려 그들을 모두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전예는 붙잡혀 있는 무리들을 만나서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형틀을 부수고 풀어주었습니다그들은 전예에게 감사해하며 머리를 조아렸고 소문이 퍼져나가 결국엔 후음의 무리들이 해산하고 근심거리가 해결되었습니다조조는 이 상황을 전해 듣고 전예를 칭찬했습니다.

 


가비능

220년 조조가 죽고 조조의 아들 조비가 뒤를 이었습니다조비는 전예를 오환교위에 임명했습니다당시 선비족은 가비능미가소리가 땅을 나누어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연합해 중국 시장에 말을 내어주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전예는 그들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서로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소리는 그들 사이의 약속을 어기며 말 천 필을 관으로 보냈고 이에 화가 난 가비능은 소리를 공격했습니다소리는 전예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전예는 소리를 돕기 위해 출진했다가 너무 깊숙이 진구해 퇴로가 끊기며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전예는 소똥과 말똥을 모아 태우고 다른 길로 빠져나갔고 가비능군는 연기와 불을 보고 전예가 그 곳에 있다고 생각하다가 전예가 수 십리를 간 뒤에야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가비능군는 다시 전예를 쫓아와 전예군를 포위했습니다전예는 병사들에게 전투준비를 시키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보병과 기병이 남문으로 나가게 했습니다가비능군는 모두 남문으로 이목이 쏠렸고 전예는 준비시킨 정예병을 이끌고 북문으로 나가 남문으로 나간 병사들과 함께 협공했습니다양쪽에서 공격을 받은 상대는 혼란에 빠져 달아났고 전예는 이들을 쫓아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오환왕 골진

오환왕 골진이 사납고 교활하여 공손하게 굴지 않자 전예는 백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골진의 진영으로 들어갔습니다골진이 전예를 맞이하자 전예는 병사들에게 골진을 베라고 시켰고 골진의 죄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며 무리들을 호령했습니다골진의 자리는 골진의 동생이 대신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전예의 명성이 퍼졌습니다.

 


산적 고애

산적 고애가 부하들을 이끌고 노략질을 하자 전예는 선비족 소리에게 고애를 공격하게 했고 공을 인정받아 장락정후로 봉해졌습니다전예는 오환교위로 9년을 지내며 이민족들이 뭉치거나 강해지는 것을 견제했습니다이후 전예는 여남태수가 되고 진이장군의 직위를 더했습니다.

 


오나라의 사신

공손연이 요동에서 모반을 꾀할 때 조정에서는 공손연을 칠 후보를 고민했습니다중령군 양기는 전예를 추천했고 전예는 청주의 제군을 도독하여 공손연을 토벌하러 갔습니다오나라는 공손연과 결탁을 하려고 배에 태워 사자를 보냈습니다전예는 오나라의 배가 공손연에게 다녀오면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 풍랑을 만나는 것까지 계산해 산동반도의 동쪽 끝에 있는 성산으로 올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여러 장수들은 전예를 비웃으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전예의 예측대로 오나라의 배는 풍랑을 만나 해안으로 왔고 전예는 그 무리를 사로잡았습니다.

 


합비 신성

234년 촉의 제갈량에게 호응해 오나라의 손권이 10만 대군을 칭하며 합비의 신성을 공격했습니다정도장군 만총이 합비를 구권하려 하자 전예가 말했습니다.

 

상대가 노리는 것은 작은 이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신성을 담보로 하여 우리의 대군을 끌어들이려는 것입니다적이 공성하도록 내버려두어 예기를 꺾어야 하고 그들과 적극적으로 싸워서는 안 됩니다성이 함락되지 않아 적군이 파태(피로하고 나태함)해질 것이니 연후에 적을 공격하면 크게 이길 수 있습니다만약 적이 우리의 계책을 알아챈다면 스스로 달아날 것입니다적이 달아날 때 곧바로 병사를 보내면 적의 계책에 빠져드는 것으로 대군을 상대할 때는 상대가 우리 계책을 알기 어렵도록 해야 합니다.”


손권군은 후퇴했고 후에 오나라가 다시 침범했지만 전예가 가서 이를 막아냈습니다.

 


경초(237~239조예는 전예의 식읍을 3백 호 늘렸고 이전과 합쳐 5백 호가 되었습니다.

 


죽음

정시(240~248조예의 뒤를 이은 조방은 전예를 사지절 호흉노중랑자으로 승진시키고 진위장군의 직위와 병주자사를 겸하게 했습니다이후 위위가 되었다가 태중대부가 되었고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전예가 죽은 뒤 아들 전팽조가 작위를 이었습니다.

 


전예의 성격

전예는 청렴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포상을 받으면 모두 장졸들에게 나눠주었고 사사로이 선물을 받으면 모두 장부에 적고 관에 보관하면서 자기 집에 들이지 않았습니다때문에 전예의 집안은 가난했고 많은 사람들이 전예의 절개와 의리를 높게 생각했습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전예는 제량량의 북벌 때 손권군이 양양을 공격하자 전예가 등장해 양양을 지키는 장면에만 나옵니다연의에서는 비중이 적지만 실제 경력을 보면 매우 뛰어난 인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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