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유표

삼국지 유표 (142년 ~ 208후한 말 유표

 

유표는 연주 산양군 고평현 사람으로 자는 경승(景升)이며 전한의 경제의 네 번째 아들 노공왕 유여의 자손입니다당고의 금 사건으로 숨어 지내던 유표는 황건적의 난으로 상황이 변하면서 대장군 하진의 밑에서 북군중후를 지냈습니다.

 

당고의 금 – 중국 후한 말기에 관료와 환관이 충돌해 환관세력이 관료를 금고(감옥에 가두다.)에 처한 탄압 사건.



 

190년 동탁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형주자사 왕예가 죽으면서 유표가 그 후임으로 형주자사에 임명되었습니다하지만 형주 상황은 수많은 호족들이 세력을 일으키고 치안이 불안정했습니다유표는 이 때문에 목적지인 형주의 무릉으로 가지 못하고 남군에 머물렀습니다.

 

유표는 남군의 강한 호족들인 채모괴월괴량과 친분을 맺고 양양으로 이동한 후 그들의 도움을 받아 형주의 반대 세력들을 토벌하고 형주를 통치했습니다이후 동탁의 폭정으로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면서 유표도 이에 참여했습니다.



원술 손견

반동탁 연합군의 손견 등이 낙양을 되찾고 이후 반동탁 연합군은 분열했고 원소와 원술이 서로를 견제했습니다유표는 원소와 연합하며 원술을 견제했고 원술은 손견에게 형주를 치게 했습니다.

 

유표는 황조를 보내 손견과 싸우게 했지만 패배하면서 손견이 양양을 포위하게 됩니다하지만 손견이 도망치던 황조를 쫒다가 화살에 맞아 죽으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유표가 유리해졌고 형주를 지켜냈습니다.

 

동탁이 죽고 이각과 곽사가 장안의 정권을 장악했을 때 유표는 조정에 공물을 바쳤고 이각은 유표의 지원을 받기 위해 종요를 보내서 황제의 백부라 부르며 성무후에 봉하고 진남장군형주목으로 임명했습니다.

 

원술과 조조가 싸울 때 유표는 원술의 보급로를 끊어 원소와 협력관계에 있던 조조를 지원했고 원술은 조조에게 패하고 도망쳤습니다.

 

194년 익주목 유언이 죽고 아들 유장이 뒤를 이으면서 익주의 호족 감녕 등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유표는 지원군을 보내 유장을 도왔고 감녕은 패하고 유표에게 항복했습니다감녕은 유표 밑으로 들어갔지만 탐탁치 않게 느꼈고 유표도 감녕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196년 장제가 식량이 부족해 형주의 남양을 침략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고 맙니다유표는 장제가 상황이 좋지 않아 형주에 왔는데 내가 예를 다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며 장제군을 받아들였습니다.


 

 

 



조조

조조가 원소와 적대하게 되면서 유표는 원소와 연합하고 조조를 견제했습니다조조가 장제의 뒤를 이은 조카 장수를 공격하고 장수가 항복했다가 가후의 계책으로 조조군을 물리쳤습니다조조가 황제를 칭한 원술을 격파할 때 유표는 장수를 지원하며 남양 일대에서 여러 차례 조조군과 싸웠습니다.

 

조조가 다시 한 번 장수를 공격하면서 유표는 장수에게 원군을 보냈고 가후의 활약으로 조조군을 격파했습니다하지만 추격을 말리는 가후의 말을 듣지 않고 조조군을 추격하다가 복병에 당해 패하고 맙니다.

 

조조는 유표를 견제하기 위해 장사태수 장선을 설득해 반기를 들게 했고 유표는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199년 장수가 조조에게 항복하고 200년 관도 전투에서 원소가 유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유표는 장선과 싸우느라 원소를 돕지 못합니다장선이 병에 들어 죽고 아들 장역이 뒤를 이으면서 장역을 토벌하는데 집중한 유표는 마침내 장역을 제압하고 장강의 남쪽을 차지하면서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유표는 형주를 뛰어나게 통치하면서 안정시켰고 학교를 세우고 유학을 장려했습니다수많은 학사들이 모여들고 형주는 더욱 더 발전해 나갔습니다.

 


유비를 받아들이다

201년 여남에서 조조에게 대항하던 유비가 유표에게 의지하러 오고 유표는 유비를 받아들여 신야에 머물게 하며 조조를 견제했습니다.

 

조조가 원소의 아들들인 원담원상과 싸우는 동안 유비는 섭현을 공격했다가 하후돈과 우금을 박망으로 유인해 큰 피해를 주고 승리합니다하지만 원담과 원상이 서로 싸우게 되면서 원담은 조조에게 항복하고 조조는 형주를 공격하려고 하다가 원담을 받아들이고 원상을 치기 위해 돌아갑니다.

 

손권은 여러 차례 강하를 공격했고 강하태수 황조가 손권을 잘 막아주었고 유표의 조카 유반과 황충은 장사를 수비했습니다. 207년 조조가 원상과 오환족의 정벌을 위해 북쪽으로 간 사이에 유비는 유표에게 조조가 없는 기회를 잡아 조조를 공격하자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유표는 유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죽음

208년 손권의 공격을 막아주던 황조가 죽고 유표의 아들 유기가 황조의 후임을 맡았습니다조조가 하북을 차지하고 형주를 치러 내려올 때 유표는 67세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유표의 아들은 유기와 유종이 있었는데 채모장윤 등의 지지를 받던 유종이 유표의 뒤를 이었습니다유비는 유기를 지원하며 유기를 형주자사로 내세웠고 결국 유표의 두 아들 유기와 유종은 서로 대립하게 됩니다.

 


평가

유표는 키가 8척에 가까워 위엄이 있는 풍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팔준의 한 명으로 불릴 만큼 학식이 뛰어났고 난세의 시대에서 형주를 잘 통치하며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삼국지의 진수는 유표와 원소를 함께 위용이 당당했고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다겉으로는 관대해 보였지만 내면은 의구심이 강했고 계책을 좋아하면서도 결단력이 부족했다뛰어난 인물이 있어도 쓰지 못했고 좋은 말을 들어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장자를 후계로 삼지 않고 서자를 후계로 삼아 상황이 안 좋아 진 것은 불행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삼국지의 가후는 유표에 대해 난세가 아니라면 삼공에 오를만한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의심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해 난세에서는 무능한 인물로 봐야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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