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곽도 ( ? ~ 205년) 후한 말 원소
곽도는 예주 영천군 사람으로 자는 공칙(公則)입니다. 곽도는 영천태수 음수에게 순욱, 순유, 장중, 종요 등과 함께 발탁되어 계리로 지냈습니다. 이후 순심, 신평과 함께 원소를 섬기게 됩니다.
191년 곽도는 장도, 순심, 고간 등과 함께 기주목 한복을 설득해서 원소에게 기주를 넘기게 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삼국지 위서 원소전>에는 195년 곽도가 헌제에게 사자로 파견되었다가 기주로 돌아가 원소에게 헌제를 맞이할 것을 조언했지만 원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헌제전>과 <후한서 원소전>에는 저수가 헌제를 맞이할 것을 조언하고 곽도, 순우경은 반대하는 것으로 기록되어있어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199년 원소 진영에서 조조군을 상대로 하는 회의가 열렸을 때 저수와 전풍은 조조군을 상대로 장기전으로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곽도와 심배는 단기전으로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소는 곽도와 심배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또 곽도는 원소에게 저수의 권력이 너무 강하다고 말했고 원소는 그 말을 듣고 감군(당시 저수가 감군으로 있었습니다.)의 권한을 3명의 도독으로 분산시키며 저수, 곽도 순우경을 도독으로 임명했습니다.
관도 대전
200년 원소군과 조조군의 싸움인 관도 대전이 시작되고 곽도는 순우경, 안량과 함께 백마에 주둔하고 있던 유연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조조군에게 원소군의 명장 안량, 문추가 전사하고 맙니다.
원소는 순우경에게 군량기지 오소를 수비를 맡겼고 조조군은 군량을 노리고 오소를 공격했습니다. 곽도는 원소에게 조조군의 본진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했고 장합은 조조군의 본진 수비가 견고할 것이라며 오소를 지켜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소는 경기병을 오소로 보내고 중장비부대를 본진으로 공격하는 선택을 했는데 결국 조조군에게 오소가 함락당하며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곽도는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두려워 패배의 책임을 장합에게 뒤집어씌웠고 모함을 받은 장합은 조조군에게 투항하게 됩니다.
후계자 싸움
202년 원소가 후계자를 확실하게 정하지 않고 죽게 되면서 후계 다툼이 생기게 됩니다. 곽도는 신평과 함께 원소의 조카 원담을 후계자로 지지했고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심배와 봉기는 원소의 셋째 아들 원상을 후계자로 지지했습니다. (원담은 원래 원소의 장남이지만 원소의 형 원기의 양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203년 곽도와 신평은 원담을 보좌하며 원상을 먼저 공격하게 했지만 원상 세력의 반격을 받고 패배하며 평원으로 도망치면서 위기에 빠졌습니다. 곽도는 원담에게 조조에게 잠시 의지할 것을 조언했고 원담은 신비를 파견해서 조조와 동맹을 맺습니다.
죽음
원상은 조조와 원담에게 공격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고 업을 함락당하며 심배는 처형당하고 맙니다. 원담은 원상과 조조가 싸우는 동안 기주를 공격하며 세력을 키워 반전을 노려보았지만 결국 패배하고 205년 남피에서 원담과 곽도는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곽도는 원소군의 참모로 나옵니다. 문추가 조조 밑에 잠시 있던 관우에게 당했을 때 원소군에 있던 관우의 의형제 유비를 처형하도록 심배와 함께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 유비가 형주의 유표에게 갈 때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유비가 돌아오지 않아 원소가 유비를 토벌하려 하자 손책과 동맹을 맺어 조조를 치도록 조언했고 원소는 이를 따랐습니다.
이후 최후에는 남피 전투에서 악진의 활을 맞고 성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게임으로 유명한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게임에서는 원소군의 뛰어난 지장들인 전풍, 저수, 심배에 비해 떨어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준수한 지력과 정치력으로 내정에서 유용하게 활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