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육적

삼국지 육적

 

육적은 오군 오현 출신으로 후한 말과 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이자 학자입니다여강 태수를 지냈던 육강의 아들로 자는 공기(公紀)입니다.



회귤고사 (육적회귤회귤유친회귤)

육적은 6살 때 구강에서 아버지 육강과 함께 원술을 만났습니다원술은 귤을 내와서 그들에게 대접했습니다그들이 떠날 때 육적이 인사를 하다가 품에 숨겼던 귤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원술이 육적에게 물었습니다.

원술 손님으로 왔으면서 왜 귤을 품에 넣어 가져가는가?”

 

육적 돌아가서 어머니께 드리려고 했습니다.”

 

원술은 육적의 대답을 듣고 그를 기특하게 여겼습니다.

 

육적의 일화는 원나라 곽거경이 지은 <이십사효>에도 수록되었습니다. ‘회귤고사육적회귤회귤 등이라 하며 효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되었습니다.

 

 

 

원술, 손책, 육강

육적의 아버지 육강은 원술이 요구한 군량 지원을 거절하고화가 난 원술은 손책에게 여강태수 자리를 약속하고 육강을 공격하게 합니다손책은 예전에 육강을 만나러 갔을 때 그가 직접 만나주지 않고 주부를 시켜 자신을 접대하게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을 낮게 여긴다 생각하며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마침 원술을 요청으로 육강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육강은 육적을 포함한 자신의 일족들을 오현으로 피난시켰고 결국 손책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원술은 약속과는 달리 여강태수에 유훈을 임명했고 이는 손책이 원술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결심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손책은 오군에 있을 때 장소장굉진송을 상빈(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손님)으로 모셨습니다그들은 무력을 사용하여 주변을 평정하고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 말석에 앉아 있던 나이가 어린 육적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옛날 관이오는 제환공을 보좌하여 제후들을 규합하고 천하를 통일했지만 전쟁용 수레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또 공자가 말하기를 먼 곳에 있는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덕행을 닦아 오게한다고 했습니다지금 논의하는 사람들은 도덕으로 천하를 얻을 방법을 연구하며 노력하지 않고 무력만을 숭상하고 있습니다이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육적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크게 놀라며 감탄했습니다.



육적은 용모가 웅장하고 박학다식하여 천문역법산술 등 학문에 능통했습니다학문으로 이름을 알리며 나이 차이가 많았던 형주의 유명한 선비 방통과 명성이 있었던 우번과도 우의를 나누었습니다.



손책이 세상을 떠나고 손권이 뒤를 이었고손권은 육적을 등용하여 주조연으로 삼았습니다하지만 육적의 직선적인 태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방으로 보내져 울림태수가 되었습니다.

편장군에 임명되어 2천 명의 병사를 받기도 했는데 육적은 다리가 불편했고 학문에 뜻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인 일을 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혼천도>를 지었고, <주역>에 주를 달았고, <태현>을 풀이했습니다.


 

 

 



청렴한 육적의 일화

육적은 관리 생황을 할 때 청렴한 행동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태수 임기가 끝나서 배에 집을 싣고 돌아가려는데배에 실은 집이 너무 가벼워 배가 뜨지 않았고 주변에 있는 바위를 싣고 나서야 배를 띄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고향으로 돌아간 육적은 배에 실었던 바위를 자기 집 앞에 두었다고 합니다.



죽음

육적은 자신이 죽음이 가까워 오는 것을 알고 사를 지었습니다.

한의 지사 오군의 육적은 어려서는 <시경>, <상서>를 익혔고장성해서는 <예기>, <주역>을 익혔지만명을 받아 남쪽을 정벌하다가 불행히 질병에 걸려 위독해졌다내가 만난 수명을 길지 못하니 세상과 영원하지 못함이 슬프구나

 

지금부터 60년이 지나면수레는 궤를 같이하고문자를 같이 사용하게 될텐데이를 보지 못하니 아쉽구나

 

육적은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육적의 자식은 육굉육예 두 명의 아들과 딸 육울생이 있었습니다.



평가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육적을 높게 평가했으며 육적의 공적을 공자의 <춘추>에 대한 좌구명의 공적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장주의 공적에 비유하며 칭찬했습니다그런 인재 육적에게 남월을 지키게 한 것은 손권이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며 평했습니다.


형주의 유명한 선비 방통은 주유의 상여(시신을 운반하는 기구)를 운구하여 오나라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육적고소전종과 함께 만났습니다방통은 육적에 대해 굼뜬 말이라 할 만하니 매우 빠른 발의 힘이 있다고 평했습니다.



삼국지연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육적은 제갈공명이 동오에 찾아와 설전을 벌이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육적 조조는 전한의 공신인 상국 조참의 후예이지만유비는 황실 후예라는 것이 별 근거가 없고 고작 돗자리나 짚신을 짜던 사람인데 어떻게 조조에게 대적할 수 있겠소?”

 

제갈량 유비가 황실의 후예임은 황실이 인증한 바이며조조가 조참의 후예라면 조조가 황제를 끼고 전횡을 부리는 것은 한실에는 역적이고 조씨 가문에는 패륜아가 되는 것이오

제갈량 전한의 고조 유방은 정장의 지위에서 시작해 천하를 얻었는데 유비가 돗자리나 짚신을 짜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오.”

 

육적은 공명의 말에 말문이 막혀 답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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