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방덕

삼국지 방덕

 

방덕은 남안군 환도현 출신으로 자는 영명(令明)입니다. 방덕은 젊어서부터 군리, 주종사를 지냈습니다.

 

마등을 따르다

초병 연간(190~193)에는 마등을 따라 반란을 일으킨 강족, 저족을 무찌르며 공을 세웠고 승진하여 교위가 되었습니다.

 

202년 조조가 원소의 아들들인 원담, 원상 형제들과 싸울 때 원담은 곽원, 고간 등을 보내 하동군을 공격하게 했고, 조조는 종요에게 여러 장수들을 이끌게 하며 그들을 토벌하게 했습니다. 마등은 원상과 연합하고 있다가 종요의 설득으로 마초와 방덕을 보내 고간, 곽원과 맞서게 했습니다. 방덕은 마초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선봉이 되어 그들을 크게 격파했습니다.

 

방덕은 앞장서 싸우다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장수를 베고 수급을 취했습니다. 대승을 거둔 뒤 방덕이 그 장수의 수급을 꺼내보이자 이를 본 종요가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방덕이 벤 장수는 종요의 조카 곽원이었습니다. 방덕이 종요에게 사과하자 종요가 말했습니다.

종요 곽원이 내 조카이기는 하나 국가의 적이오. 어찌 경이 사과할 필요가 있겠는가...”

방덕은 공을 인정받아 중랑장에 임명되고 도정후로 봉해졌습니다.

 

장백기 격파

장백기가 홍농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방덕은 마등을 따라 정벌에 나섰고 장백기를 격파했습니다. 방덕은 전장에서 늘 적진에 돌격해서 적군을 격파했으며 마등군에서 수위의 무용을 자랑했습니다.

 



마초를 따르다

208년 조조는 형주를 공격하기 전에 마등을 염려해 관직을 주며 조정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마등은 승낙했지만 좀처럼 조정에 들어가지 않다가 결국 장남 마초에게 세력을 물려주고 조정에 들어가 위위로 임명되었습니다. 마등의 아들 마휴는 봉거도위, 마철은 기도위에 임명되었고 마등은 가족들과 업으로 이주했습니다.

방덕은 그대로 남아 마초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마초는 한수와 연합해 군대를 이끌고 동관으로 진군했습니다. 마초군은 조조군이 황하를 건널 때 기습하여 조조를 거의 죽음 직전으로 몰아가기도 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황은 불리해져 갔습니다. 마초는 대가를 요구하며 휴전을 권했지만 조조가 거절했고 결국 한수와의 불화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조조는 마초의 아버지인 마등의 삼족을 멸했고 마초와 사촌 마대만 남게 되었습니다.

 



조조에게 투항

서북 지역으로 돌아간 마초는 강족, 저족 등의 지지를 받아 군대를 모아 다시 전쟁을 시작했지만 패배하며 마대와 함께 도망쳐 장로에게 의지했다가 유비를 다르게 되었고, 한중에 남은 방덕은 215년 한중을 차지한 조조에게 투항했습니다.

조조는 방덕의 명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덕을 입의장군에 임명하고 관문정후로 봉하여 식읍 300호를 내렸습니다.

 

 

 

 



번성 공방전

후음, 위개 등이 완성에서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방덕은 조인과 함께 완성 공략에 성공했고 후음, 위개를 참하고 남쪽으로 진군했습니다. 번성에 주둔하며 관우군과 싸웠습니다.

 

방덕의 형이 한중에 있는 것 때문에 방덕을 의심하는 장수들이 있었습니다. (방덕의 사촌형 방유가 촉에 있을 때)

방덕 나는 국은을 입은 몸이니, 죽음으로 의를 다하겠소. 내가 직접 나서서 관우를 치고자 생각하고 있소. 올해 안에 내가 관우를 죽이지 못하면, 관우의 손에 죽겠소.”

 

방덕은 관우와 교전하여 관우에게 화살을 쏘아 이마에 적중시켰습니다. 항상 백마를 타고 다녔던 방덕을 보고 관우의 진영에서는 그를 백마장군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조인은 방덕을 번성에서 북으로 십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게 했습니다. 십여 일 계속해서 비가 오자 한수가 범람하여 물난리가 났습니다. 방덕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제방에 올라 물을 피했습니다. 관우군은 큰 배를 타고 화살로 공격에 나섰습니다. 방덕은 갑주를 두르고 활로 맞섰고 빗나가는 화살이 없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으로 동형, 동초 등이 항복하려고 하자 방덕은 그들을 붙잡아 그 자리에서 베었습니다.

 

관우군의 공격은 점점 격렬해졌고 방덕은 화살이 다 떨어져 단병접전을 펼쳤습니다.

방덕이 독장 성하에게 말했습니다.

방덕 내가 듣기로 훌륭한 장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도망치지 않고, 열사는 절개가 꺾이며 목숨을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이다.”

 

치열한 전투는 계속되었고 물은 계속 불어나 장병들이 거의 투항했습니다. 방덕은 작은 배를 이용해 조인의 진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거친 물살에 배가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뒤집힌 배에 매달려 물속에 있다가 관우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죽음

관우 경은 형은 한중에 있소. 내 경을 장수로 삼으려 생각했는데 어찌 빨리 항복하지 않았소?”

방덕 애송이야 어찌 항복 따위를 논하느냐! 위왕(조조)께서는 정병 백만 명을 거느리고 위엄을 천하에 떨치고 계신다. 범재에 지나지 않는 유비가 어찌 대적하겠느냐!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적의 장수가 될 생각은 없다.”

방덕은 결국 관우에게 죽고 말았습니다.

 

조조는 방덕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방덕의 두 아들은 열후에 봉해졌습니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후 방덕의 묘에 사자를 보내 장후(壯侯)라는 시호를 내렸고 방회 등 아들 네 명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리며 식읍 100호를 주었습니다. 방덕의 아들 방회의 용맹함은 방덕에 버금갔고 중위장군까지 올랐습니다.

 


진수의 평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방덕을 죽을 각오로 싸우고 적을 꾸짖었으니, 주가의 절개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삼국지연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방덕은 마초의 꿈을 해몽해주며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마대가 돌아와 마초의 아버지 마등의 비보를 알렸고, 방덕은 마초와 함게 조조에게 복수를 나섭니다여러 전투에서 활약을 했지만 결국 마초군은 패배했고 한중의 장로에게 의지합니다. 마초는 유비를 따르게 되고 방덕은 병으로 한중에 남게 됩니다.

조조가 한중을 공격할 때 방덕은 조조와 대적했지만 함정에 빠져 붙잡히게 되고 조조에게 귀순합니다. 이후 유수구 전투에서 진무를 격파하기도 하고, 한중 공방전에서 조조를 구하기도 합니다.

유비 수하인 방유와의 관계로 의심을 하는 장수들이 있어 관을 메고 전장에 나서 필사의 각오를 내보이고, 관우와의 싸움에서 화살을 날려 관우의 왼팔을 맞추기도 하지만 관우의 수공에 당해 포로가 되고 맙니다. 우금은 관우에게 투항했지만 방덕은 투항을 거부하다 처형을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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