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장기 (위나라)

삼국지 장기 (위나라)

 

장기는 사례 풍익군 고릉현 출신으로 자는 덕용(德容)입니다.

 

유은

군의 공조였던 유은은 장기 어렸을 때 그를 보고 특이하다고 평가하며 방백(장관)의 그릇이라고 평했습니다. 유은은 장기를 초대하여 대화를 나눈 후 아들 유초를 부탁했습니다. 장기는 고민 끝에 사양했다가 거듭되는 부탁에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장기는 명문가 출신은 아니었지만 용모와 동작에 기품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 16세에 군의 작은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집안의 힘으로 승진할 길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상등품의 칼, , 서판을 모아 놓았다가 상급 관리에게 주어 얼굴을 익혔습니다.

 


장기는 점점 비중 있는 임무를 맡기 시작했고, 효렴으로 천거되었지만 부임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조가 사공으로 있던 시절 장기를 불렀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이후 무재로 천거되어 신풍의 현령이 되었습니다. 치적(잘 다스린 공적)이 장안 주변에서 제일 뛰어났습니다.

 

 


마등

원소가 세상을 떠난 후 원소의 아들 원상은 여양에서 조조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하동태수 곽원, 병주자사 고간, 남흉노의 선우 호주천 등에게 평양을 공격하게 했고, 서방으로 사자를 파견하여 관중 지방의 군벌들과 연합을 노렸습니다.

 

조조 진영의 사례교위 종요는 장기에게 관중의 유력 호족인 마등을 설득하도록 했습니다. 장기는 마등에게 싸움, 항복의 이해관계를 설명했고 마등은 장기의 설득에 응했습니다. 마등은 자신의 아들 마초와 방덕에게 1만 군사를 주어 조조를 돕게 했습니다. 마초와 방덕은 종요와 함께 곽원의 수급을 베고 고간과 호주천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후 조조에게 항복했던 고간이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하내의 장성의 무리는 효산과 면수 사이에서 소란을 피웠고, 하동의 위고와 홍농의 장염이 각각 병사를 일으켜 호응했습니다.

 

조조는 장기를 의랑으로 임명하여 종요군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장기는 다시 마등을 설득하여 위고를 격파했습니다. 고간은 형주로 달아났고 장기는 공을 인정받아 무시정후에 봉해졌습니다.

 

 


토벌 

211년 마초와 관중 지방의 군벌들이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장기는 조조를 따라 화음에서 마초를 격파했고 서쪽으로 관우를 평정하며 경조윤으로 승진했습니다. 장기는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모아 진정시켜 다시 현과 읍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백성들은 장기를 흠모했고 이후 장기는 상서가 되었고 지방으로 나가 옹주자사가 되었습니다.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칠 때 장기도 함께 했습니다. 장기는 저족들을 토벌하고 군량을 보급했습니다.

 

조홍과 함께 하변에서 오란을 격파했습니다.

하후연과 함께 송건을 토벌했고, 따로 임도와 적도를 평정했습니다.

 

조조는 황하 북쪽으로 백성들을 이주시켰습니다. 농서, 천수, 남안의 백성들은 서로 두려워하며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습니다. 장기는 농서, 천수, 남안 출신의 관리들에게 휴가를 주어 백성들을 돕게 하며 민심을 잡았습니다.

 

 

조언하다

조조가 한중의 수비를 철수하려고 할 때 유비가 무도의 저족을 취해 관중을 압박할 것을 걱정했습니다. 장기에게 의견을 묻자 장기가 답했습니다.

장기 저족을 북쪽으로 나가 곡물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하고 먼저 도달한 자에게 상을 후하게 주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장기의 계책을 따라 한중의 군사들을 철수시킨 후 장기를 무도로 보냈습니다. 저족 5만여 명을 이주시켜 부풍과 천수의 경계지역에서 살도록 했습니다.

 

 

무위의 안준, 장액의 화란, 주천의 황화, 서평의 국연 등이 군을 일으켜 스스로 장군이라고 부르며 모반했습니다. 안준은 조조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어머니와 아들을 인질로 보내고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조조는 장기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장기 안준 등은 겉으로는 나라의 권위를 빌리지만 속으로는 배반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을 존재하게 하여 서로 싸우게 하면 앉아서 이득을 거둘 수 있습니다.”

조조는 장기의 의견을 따랐고 이후 그들 중 일부는 서로 싸우다가 자멸했습니다.

조비가 왕위에 오른 후 안정태수 추기를 양주자사로 임명했습니다. 장액의 장진은 군수를 체포하고 병사를 일으켰습니다. 황화와 국연도 병사를 일으켜 호응했습니다. 장기는 호강교위 소칙에게 병사를 주어 토벌하게 했고 소칙은 공을 세웠습니다. 장기는 도향후로 승진했습니다.

 

 

 

 



조비

양주의 노수, 호이의 건기첩, 치원다 등이 모반을 일으키자 조비는 장기가 아니면 양주를 안정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여 추기를 소환해 장기와 교체했습니다. 장기는 양주자사가 되었고, 조비는 호군 하후유와 장군 비요 등을 파견해 후속 부대로 장기를 돕게 했습니다.

 

토벌

장기가 금성까지 가서 황하를 건너려고 하자 장수들이 병사는 적고 길이 험하다며 반대했습니다. 장기는 무위가 위급하다며 신속하게 가야한다고 했고 마침내 황하를 건너 무위를 점령했습니다.

 

장기는 무위를 점령한 후 후속 부대인 비요가 도착하자 진군하여 공격할 준비를 했습니다. 장수들은 사병들이 피곤하고 적군의 기세가 강하다며 반대했습니다.

장기 군량이 부족해서 적을 이용하여 보급을 해야 하고, 만약 적인 우리를 보고 깊은 산으로 물러난다면 추격하는 길이 더욱 험해질 것이오. 하루 적을 간과하면 근심은 몇 대에 있소.”

 

장기는 현미까지 진군했습니다. 적군은 거센 바람을 활용하는 화공으로 장기군의 진영을 불태우려 했습니다. 병사들이 두려움에 빠지자 장기는 정예 병사 삼천을 매복시키고 참군 성공영에게 기병 천여 명을 인솔하게 하여 퇴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적군은 성공영의 뒤를 쫓았고, 장기는 복병을 보내 적군의 뒤를 끊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수많은 적군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조비는 매우 기뻐하며 조서를 내렸습니다. 장기는 서향후로 승진했습니다.

 



주천의 소형이 강족, 정령과 함께 국경지대를 공격했습니다. 장기는 하후유와 함께 그들을 격파했고 소형, 인대 등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장기는 상소를 올려 하후유와 함께 좌성의 수리, 요새 구축, 봉화대, 군량 물자로 침입에 대비할 것을 청했습니다.

 

장기는 무조건 군사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했습니다. 적의 장수를 죽여 수급을 보내는 자에게는 영토와 상을 주게 했고 국광 부하들은 국광의 수급을 베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장기는 옹주와 양주를 10여 년간 통치하며 뛰어난 정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초빙한 부풍의 방연, 천수의 양부, 안정의 호준, 주천의 방육, 동황의 장공, 주생열 등 모두 명성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음

223년 장기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기의 작은 아들 장옹귀는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장기의 시호는 숙후라고 추증했고, 장기의 장남 장집이 뒤를 이었습니다.

장집의 딸은 훗날 황후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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