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조휴

삼국지 조휴

 

조휴는 예주 패국 초현 출신으로 자는 문열(文烈)입니다. 조휴는 위나라 조조의 조카입니다.

 

전란이 일어나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조휴의 가족들은 흩어져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0여 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홀로 한 명의 객과 함께 임시로 장사를 지냈습니다. 이후 조휴는 노모를 모시고 오군으로 갔습니다.

 


조조

조조가 거병하자 조휴는 이름을 바꾸고 형주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 조조를 만났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조휴를 만난 조조가 말했습니다.

조조 이 아이(조휴)는 우리 집안의 천리마로다.”

조조는 조휴를 자신의 아들 조비와 함께 머물게 하며 아들같이 대했습니다.

 

 

호표기

조휴는 호표기를 이끌고 많은 정벌을 수행했습니다.

 

호표기란?

조조의 친위 기병으로 정예 중 정예

조순, 조조, 조휴, 조진 등이 지휘관을 지냈습니다.

 

 

한중 공방전

218년 한중 공방전에서 유비는 오란을 보내 하변에 주둔하게 했습니다. 조조는 조홍을 보내 오란과 맞서게 했는데, 조휴를 기도위로 임명해 조홍의 참군으로 참전하게 했습니다.

 

장비와 마초가 오란을 지원해 조홍군의 배후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군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의심하자 조휴가 말했습니다.

조휴 적이 실제로 길을 끊고자 한다면 복병으로 몰래 행군해야 하는데, 오히려 과장하는 모습을 보이니, 이는 실제로는 그들이 실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군이 아직 집결하지 못했을 때 오란을 공격해야 합니다. 오란을 격파하면 장비는 달아날 것입니다.”

 

조홍은 조휴의 말을 받아들여 오란을 공격했고 격파했습니다. 조휴의 말대로 장비와 마초는 달아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휴는 참군으로 참여했지만 장수처럼 활약했고, 조조는 이후 한중에서 철수한 후 조휴를 중령군으로 임명했습니다.

 

 

조비

220년 조조가 세상을 떠나고 조조의 아들 조비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조휴는 여군장군에 임명되고 동양정후에 봉해졌습니다.

 

하후돈이 세상을 떠나자 조휴는 진남장군 가절로 임명되었습니다.

 

 

손권이 장수를 보내 역양에 주둔하게 하자 조휴가 가서 그를 격파했습니다. 조휴는 따로 군사를 보내 강 건너 무호에 있는 적의 둔영 수천 가를 불태웠습니다. 이 공을 인정받아 정동장군, 양주자사로 승진했고 안양향후로 봉해졌습니다.

 


조비의 총애 

조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조휴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조비는 시중을 보내 조휴가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게 하였지만 조휴는 여전히 힘들어 했습니다. 조휴는 초로 돌아가 어머니의 장사를 지내고 싶다고 청했고, 조비는 이를 받아들여 고향으로 가서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휴가 장사를 치르고 돌아오자 조휴를 총애한 조비는 친히 만나 그를 위로했습니다.

 

 

 

 


 

222년 조비가 손권을 공격할 때 조휴는 장료, 장패 등과 함께 동구로 나아가 오나라군을 공격했습니다. 조인은 유수를 공격했고 조진, 하후상, 장함, 서황은 남군을 공격했습니다.

손권은 주환을 보내 조인을 상대하게 했고 여범, 전종, 서성에게 조휴, 장료, 장패를 상대하게 했습니다. 제갈근, 반장, 양찬을 보내 조진, 하후상, 장합, 서황을 상대하게 했습니다.

 

11월 큰 바람이 불어 여범과 수천 명의 병사들이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조휴 등은 폭풍으로 약해진 오라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했습니다. 남은 오나라군은 장강 남쪽으로 건너 하제군과 합류했습니다. 하제의 군대는 매후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무장하고 있었는데 조휴 등은 이를 보고 두려워하며 물러났습니다.

 

조휴는 장패를 보내 서릉을 습격하게 해서 공을 세웠지만, 서성의 군대를 공격해서 승리하지 못했고, 윤로에게 전종을 공격하게 했지만 윤로는 패배하고 전자했습니다.

 

223년 조인의 패배로 위나라의 오나라 공격은 중단되었습니다.

 

 

조예

226년 조비가 세상을 떠나고 조예가 뒤를 이었습니다. 조휴는 조진, 사마의와 함께 조예를 보좌했습니다. 오나라의 장수 심덕이 환현에 주둔하자 조휴는 그를 격파하고 수급을 베었고 한종, 적단 등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식읍이 늘고 대사마로 승진했습니다.

 

 

석정 전투

228년 조예는 두 갈래 길로 군대를 보내 오라라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사마의는 한수로, 조휴는 10만 병사를 이끌고 심양으로 진격했습니다.

 

조휴는 주방이 거짓으로 투항한 것을 믿고 적진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육손, 전종, 주환이 조휴를 공격하자 자신이 주방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조휴는 퇴각하려다가 군사수가 많은 것을 깨닫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싸움이 불리해지자 퇴각하여 석정에 머물렀습니다.

 

조휴가 패배할 것을 예상한 가규의 도움과 죽을 각오를 하고 활약한 왕릉의 활약으로 조휴는 퇴각할 수 있었습니다. 밤중에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버리고 온 군수 물자가 매우 많았고 1만의 병사가 죽거나 포로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가규전에 주석으로 달린 위략에 따르면 가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휴는 가규가 자신을 구원해 주었지만 오히려 늦게 온 것을 원망했습니다. 가규를 모함하는 상소를 올렸고, 가규도 돌아와 상소를 올렸습니다. 조정에서는 가규가 옳은 것을 알았지만 중책을 맡은 조휴의 입장을 생각하여 두 명 모두에게 잘못을 묻지 않았습니다.

 


죽음

조휴는 석정 전투 패배에 대해 조예에게 글을 올려 사죄했습니다. 조예는 오히려 조휴를 위로하고 예우와 포상을 늘렸습니다. 조휴는 패배의 분함과 부끄럼움으로 등에 악성 종기가 생겨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조예는 조휴의 시호를 장후로 했고 조휴의 아들 조조(曹肇)가 뒤를 이었습니다. 조조의 자는 장사(長思)입니다.

'삼국지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 비요  (0) 2018.01.11
삼국지 - 곽회  (0) 2018.01.04
삼국지 - 오란  (0) 2017.12.19
삼국지 - 뇌동  (0) 2017.12.19
삼국지 - 장기 (위나라)  (0) 2017.12.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