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동태후 (효인황후 영락황후)
동씨는 하간국 출신으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왕족인 해독정후 유장과 결혼합니다.
156년 동씨는 유장과 아들 유굉을 낳았습니다. 168년 동씨의 남편 유장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유굉이 해동정후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다.
167년 황제인 환제가 죽었는데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습니다. 환제의 황후였던 환사황후 두씨는 아버지 두무와 함께 유굉을 후계자로 지목했습니다.
168년 12살이었던 유굉(영제)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두황후는 두태후가 되었습니다. 유굉(영제)는 할아버지 유숙을 효원황으로, 할머니 하씨를 효원황후로, 아버지 유장을 효인황으로 추존했습니다.
두무 등은 환관들을 몰아내려고 했고 환관인 중상시 조절은 태부 진번, 대장군 두무, 상서령 윤훈, 시중 유유, 둔기교위 풍술을 해쳤습니다. 이 일로 두무의 가족들까지 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169년 영제(유굉)은 어머니 동씨를 궁으로 모시고 외삼촌 동총을 낙양으로 오게 했습니다. 동씨는 궁에 들어온 후 효인황후라고 불리게 되었고 남궁인 가덕전에 살았습니다. 가덕전은 영락궁이라고 불렸습니다.
두태후가 있었을 때는 권력이 크지 않았지만 두태후가 죽은 이후 동태후(동씨)의 권력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동태후는 영제로 하여금 관직을 팔아 재물을 얻게 했는데 곳간에는 재물이 넘쳤고 이는 한나라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81년 영제(유굉)과 왕미인 사이에서 유협이 태어났습니다. 질투와 시기가 심했던 하황후는 왕미인을 독살했고 영제는 매우 화가 나서 하황후를 폐하려고 했지만 환관들의 만류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유협을 기르다.
동태후(동씨)는 어머니를 잃은 유협을 보살피며 길렀습니다. 동태후는 하황후의 아들 유변과 자신이 기르는 유협 중에서 유협을 총애했기 때문에 몇 차례나 영제에게 유협을 태자로 세우자고 말했고 하황후는 동태후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89년 영제는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석은 유협을 후계자로, 하태후와 그녀의 오빠 대장군 하진은 유변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고 결국 유변(소제)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태후와의 대립
유변(소제)가 어린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하태후가 섭정을 했고 대장군 하진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태후는 유변을 기르고 좋아하는 동태후를 핍박했고 동태후가 정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동태후 “네가(하태후) 지금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것은 네 오빠를 믿고 그러는 것이냐? 당장이라고 표기장군(동중)에게 하진을 베라고 할 수 있다.”
하태후는 동태후의 말을 듣고 하진에게 말했습니다. 하태후와 하진은 동태후를 원래 살던 영지로 유배시키고 동중을 사로잡아 관직을 박탈했습니다. 동중은 두려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죽음
동태후는 황후가 된 이후 23년 만에 근심과 두려움으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신릉에 합장했습니다.
이후
이후 궁이 혼란한 상황에 기회를 잡은 동탁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유변(소제)를 폐하고 유협(헌제)를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동탁은 하태후가 동태후(영락태후)를 핍박해 죽게 만들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예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영안궁으로 옮기고(유폐) 독으로 시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