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여거

삼국지 여거 ( ? ~ 256) 손권, 손량

 

여거는 예주 여남군 세양현 출신으로 여범의 둘째 아들입니다아버지인 여범이 손책과 손권을 모시며 관직이 높았기 때문에 여범은 낭으로 임명되었습니다여범이 병으로 병상에 누워있게 되자 여거는 부군교위좌령군사가 되어 군사를 통솔했습니다.

 

22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거는 안군중랑장이 되었습니다여거는 산월족 토벌에 함께하며 경험을 쌓았고 가는 곳마다 격파하며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231년 태상 반준과 함께 오계만 토벌에 함께 하며 공을 세웠습니다.

 

241년 주연이 번성을 공격할 때 여거는 주이와 함께 성 외부의 수비를 깨는 활약을 했고 돌아와서 편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이후 마한부우독을 거쳐 월기교위로 승진했습니다.

 

250년 위나라의 문흠이 주이에게 편지를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하지만 주이는 문흠을 의심하여 손권에게 그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손권은 주이의 말을 받아들이고 여거에게 2만의 병사를 이끌게 하며 주이를 지원했습니다여거가 2만의 병사를 이끌고 주이와 협력해 문흠을 맞이하자 문흠은 아무것도 하지못했고 항복도 하지 않았습니다.

 

251년 폭풍으로 장강의 물이 넘쳐 성문이 침수되는 일이 있었습니다여거는 큰 배로 성문을 막아 피해를 막았는데 손권은 이를 알고 여거를 탕위장군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손화와 손패를 지지하는 파벌이 나뉘며 혼란한 시기를 보낸 이궁의 변 때 여거는 손패를 지지했습니다.

 

손권이 중병에 걸렸을 때 손권은 여거를 태자우부독에 임명했습니다태자 손량이 어렸기 때문에 손권은 여거태자태부 제갈각중서령 손홍태상 등윤시중 손준 등에게 뒷일을 부탁했습니다.


 

 

 



손량

252년 손권이 죽고 손량이 뒤를 이었을 때 여거는 우장군이 되었습니다.

252년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한 동흥 전투에서 여거는 제갈각의 지휘 하에 유찬정봉당자와 함께 싸웠고 정봉이 선봉으로 위나라군을 격파하자 후속으로 위나라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며 공을 세웠습니다.

 

253년 손준이 제갈각을 주살한 후 여거는 표기장군이 되어 서궁의 일을 맡았습니다.

 

255년 위나라에서 관구검과 문흠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승상 손준은 여거유찬과 함께 수춘을 습격했습니다위나라가 문흠을 격파하고 제갈탄이 수춘성에 들어가자 손준을 공격을 포기하고 회군을 결심했습니다돌아오는 길에 고정에서 위나라의 장수 조진과 싸워 그를 격파했습니다.

 

256년 여거는 손준의 명령으로 정북대장군 문흠거기장군 유천진남장군 주이전장군 당자와 함께 위나라를 공격했습니다하지만 손준이 죽으면서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손침을 반대하다.

손준이 죽고 손침이 그를 대신했습니다하지만 여거는 손준이 권력을 잡은 것이 분하고 두려웠기 때문에 문흠당자 등과 함께 표를 올려 등윤을 승상으로 천거했습니다하지만 손침은 여대가 죽어 공석이었던 대사마 자리에 등윤을 임명해 무창으로 보내버렸습니다여거는 손침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손침은 이에 대비해 문흠당자 등에게 여거를 체포하게 했습니다이후 손헌정봉시관에게 수군을 이끌게 하며 강도에서 여거를 요격하게 했습니다.

 

죽음

256년 여거는 신주에서 사로잡히게 되었고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위나라로 투항할 것을 권했습니다하지만 여거는 모방하는 신하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손침은 여거의 삼족을 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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