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오찬
삼국지 오찬 ( ? ~ 245년)
오찬은 양구 오군 오정 출신으로 자는 공휴(孔休)입니다. 오찬이 태어나고 어렸을 때 고성의 할머니가 오찬을 보고 그의 어머니에게 말하길 경상(재상, 최고 행정관)의 풍골(풍채와 골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손하가 조정현장으로 있을 때 오찬은 그의 밑에서 낮은 관리로 일했습니다. 손하는 오찬을 중시했고 이후에 장군이 되었을 때 표를 올려 오찬을 천거했습니다. 오찬은 곡아의 승이 되었다가 장사로 승진했습니다.
오찬은 가난한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간은 군 출신의 육손, 복정와 명성이 비슷햇습니다. 손권이 거기장군에 임명되었을 때 손권은 오찬을 불러 주부로 삼았습니다. 오찬은 산음현의 령으로 지내다가 돌아와서 참군교위가 되었습니다.
폭풍의 피해에서 사람들을 구하다.
222년 오찬은 여범, 하제와 함께 수군을 이끌고 동구에서 위나라의 조휴와 싸웠습니다. 그때 폭풍이 몰아쳐서 작은 배들이 모두 뒤집혀 침몰하고 큰 배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줄을 잡고 구해달라고 소리쳤습니다. 큰 배에 타고 있던 관리와 병사들은 사람이 많이 타면 배가 침몰할까봐 두려워하며 창과 방패로 달려드는 사람들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오찬과 황연은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며 물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그런 오찬과 황연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배가 무거워져서 침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찬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배가 침몰한다면 죽을 뿐이오!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했는데 어찌 그들을 버릴 수 있겠소?”
이때 오찬과 황연이 구한 사람들은 백명이 넘었습니다.
인재를 구하다
이후 오찬은 회계태수가 되었습니다. 오찬은 은둔지사 사담을 초빙해 공조로 임명했는데 사담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찬은 사담을 설득해 나오게 했고 이외에도 많은 인재들을 초빙했습니다.
태자태부
오찬은 소의중랑장으로 임명되어 여대와 함께 산월족을 토벌했고 이후 둔기교위, 소부로 승진했습니다. 243년 황태자 손화의 교육을 맡은 감택, 설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오찬이 태자태부가 되었습니다.
이궁의 변
손화와 손패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뉘며 권력다툼(이궁의 변)이 일어나자 오찬은 손화를 지지하며 적자와 서자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하며 손패를 하구로 보내도록 주장했습니다. 또 무창에 주둔하고 있던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소식을 알리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육손은 계속 상소문을 올렸고 손패와 양축은 오찬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죽음
결국 오찬은 손패와 양축의 참언(거짓으로 꾸며서 남을 헐뜯어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침.)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처형당하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