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이통

2017. 4. 1

삼국지 이통 (168~209)

 

이통은 강하군 평춘현 출신으로 아명(어렸을 때 이름)은 만억(萬億)이었고 자는 문달(文達)입니다이통은 장강과여수 사이에서 협객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같은 군 출신의 진공과 함께 군대를 일으켰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경쟁 무리들을 격파하고 힘을 키우다.

2천 명의 무리를 이끌던 주직이라는 사람은 겉으로는 이통진공과 친하게 지냈지만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이통은 주직을 제거하고자 했지만 진공은 이를 꺼렸습니다이통은 진공이 결단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홀로 계책을 세워 주직을 만났고 주흥이 무르익었을 때 주직을 죽였습니다주직이 이끄는 무리는 혼란스러워졌고 이통은 진공과 함께 무리를 병합했습니다.

 

이후 진공의 처남 진합이 진공을 죽이고 진공의 무리를 차지하자 이통은 진합을 공격해 격파하고 진합의 수급을 진공의 묘에 바쳤습니다이통은 황건군의 대통사 오패를 사로잡았고 그 무리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흉년으로 양식이 모자라는 일이 생기자 이통은 자신의 전 재산을 베풀었고 병사들과 함께 조강(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을 함께 먹었습니다병사들은 이통에게 충성했고 도적들은 감히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조조를 따르다.

196년 조조가 헌제를 옹립했을 때 이통은 조조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조조는 이통을 진위중랑장에 임명하고 여남 서쪽 경계에 머무르게 했습니다조조가 장수를 토벌할 때 유표가 장수에게 원군을 보내면서 조조군이 불리해졌습니다이통은 병사를 이끌고 밤이 되어서 조조에게 도착했고 조조는 이통을 선봉에 세워 장수군을 격파했습니다이통은 공을 인정받아 비장군으로 승진하고 건공후에 봉해졌습니다.

 

조조는 여남의 두 현을 나누고 이통을 양안도위로 임명하여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통의 부인의 큰 아버지가 죄를 지어낭릉장 조엄이 그를 체포하여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비록 사형 판결이 내려졌지만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은 목이나 태수가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통의 아내는 울면서 큰아버지의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하지만 이통은 조공(조조)와 함께 서로 힘을 다하고 있소도의상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공적인 법을 어길 수 없소.” 라고 말했습니다.

이통은 조엄이 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편파적이지 않음을 느끼고 그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의를 지키다.

조조가 원소와 싸울 때 원소는 이통에게 사자를 보내 정남장군에 임명했고유표가 몰래 이통을 불렀는데 이통은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통의 가까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위태로운 상황에 원소를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이통은 조공(조조)는 현명하고 이치에 밝아 천하를 평정할 것이며원소는 강성하지만 능력이 없으니 결국 조공의 포로가 될 것이오나는 죽는다 해도 조공에게 두 마음을 가지지 않을 것이오.” 라며 의리를 지켰습니다.

 

이통은 원소의 사자를 죽이고 인수를 조조에게 보냈고 구공강궁심성 등의 도적들을 공격해 격파했습니다회하와 여수 일대를 평정하고 도정후로 봉해졌고 여남 태수가 되었습니다.도산에 모인 도적 장적 등을 격파했습니다.

 


용맹

유비와 손권이 손을 잡고 조조와 싸웠습니다유비와 주유는 적벽 전투에서 승리하고 조인이 지키고 있는 강릉을 공격했고 관우는 북쪽길을 끊었습니다이통은 병사들을 이끌고 북쪽길을 지키던 관우를 공격했고 싸우며 전진하여 조인의 군대를 구출했습니다이 전투에서 이통의 용맹은 여러 장수들 중에 가장 뛰어났습니다.

 


죽음

하지만 209년 병에 걸려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조비는 이통의 시호를 강후(剛侯)로 했습니다이통이 죽고 그의 자식 이기가 작위를 이었고이기의 형 이서는 이전이 다스리는 번성에 머물며 공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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