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제갈융 ( ? ~ 253년)
제갈융은 제갈근의 셋째 아들로 제갈각, 제갈교의 동생이며 자는 숙장(叔長)입니다. 오나라의 중신인 제갈근의 아들로 태어난 제갈융은 어렸을 때 노는 것을 좋아했고 장구(글을 장과 구로 나누어 분석하는 방식, 훈고학)를 주로 익혔습니다. 그의 학식은 넓었지만 정밀하지는 못했고 기예가 많았습니다.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갈융은 기도위로 지내다가 진표(진무의 아들)가 죽자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어 군대를 이어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작위를 잇다.
241년 아버지 제갈근이 돌아가셨을 때 첫째 형 제갈각은 이미 작위가 있었고, 둘째 형 제갈교는 제갈량의 양자로 갔기 때문에 제갈융은 제갈근의 작위를 잇고 공안독이 되어 공안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사치를 좋아하다.
제갈융은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장례도 입던 옷으로 치르게 한 아버지 제갈근과는 달리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봄, 여름에는 빈객들을 초대해 연회를 열고 가을, 겨울에는 사냥을 하며 지냈습니다.
주적과의 관계
250년 위나라의 왕창이 강릉성을 공격하다가 퇴각했는데 평위장군, 낙향독 주적은 제갈융에게 편지를 보내 함께 왕창을 추격하자고 했습니다. 제갈융은 주적의 요청에 동의했고 주적은 제갈융을 믿고 기남까지 왕창을 추격했습니다. 하지만 제갈융이 약속을 어기고 돕지 않는 바람에 주적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손권은 이 사실을 듣고 제갈융을 질책했지만 형 제갈각이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면직은 면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주적과 제갈각, 제갈융의 사이는 나빠졌습니다.
252년 손권이 죽고 제갈융은 분위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죽음
253년 손준은 제갈융의 형 제갈각을 주살하고 무난독 시관, 장군 주적, 손일, 전희 등을 보내 제갈융을 체포하도록 했습니다. 제갈융은 그들이 병사를 이끌고 오자 당황하여 머뭇거리다가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성이 포위당하자 약을 먹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갈융의 자식들도 처형을 당했고 제갈근의 대가 끊길 위기에 놓이자 제갈량의 양자가 된 제갈교의 아들 제갈반이 돌아와서 제갈근의 대를 이었습니다.
가족
제갈근 - 아버지
제갈각 - 첫째 아들
제갈교 - 둘째 아들, 제갈량의 양자가 됨
제갈융 - 셋째 아들
제갈근의 딸 - 장승과 결혼
제갈융의 세 아들 - 처형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