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제갈근

삼국지 제갈근 (174년~241년)

 

제갈근은 서주 낭야군 양도현 출신으로 자는 자유(子瑜)입니다제갈근의 동생은 제갈량과 제갈균이 있습니다.

 

<오서제갈근의 선조는 낭야군 제현 출신의 갈씨로 양도현으로 이주했습니다양도현에 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 사람들이 구분을 위해 제갈이라 불렀고 이를 성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갈근은 어렸을 때 낙양에서 공부하며 모시상서좌씨춘추를 익혔습니다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제갈근은 정성을 다해 상을 치렀고 새어머니도 공손하게 모시며 자식된 도리를 다했습니다.


 




손권을 따르다.

후한 말 제갈근은 전란을 피해 강남으로 피난했습니다손책이 죽고 동생인 손권이 뒤를 이었고 손권 누나의 남편인 홍자는 제갈근을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를 손권에게 천거했습니다제갈근은 노숙 등과 함께 빈객(귀한 손님대우를 받았습니다.

 

제갈근은 손권의 장사가 되었고 후에 중사마가 되었습니다.

 

214년 유비가 촉을 차지하자 제갈근은 사자로 파견되어 형주의 반환을 요청했지만 유비는 듣지 않았습니다이후 손권은 유비와 형주 문제로 분쟁이 생기게 되었고 215년 다시 우호를 맺고 강하장사계양을 양도받는 과정에서 제갈근이 파견되었습니다외교를 하는 과정에서 유비를 따르는 동생 제갈량을 만나게 되었는데 공적으로 만나며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손권을 설득하다.

제갈근은 손권과 대화를 나눌 때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손권의 뜻에 맞지 않는 얘기면 다른 얘기를 하다가 돌려서 말하거나 비유를 들어서 말해 손권을 설득했습니다.

 

손권은 자신이 천거한 장수인 오군태수 주치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었는데 제갈근이 대화로 설득하여 마음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손권은 교위 은모를 의심해 벌을 주게 되었는데 다른 신하들이 그의 죄를 부채질해 손권의 노여움이 커져 갔습니다제갈근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손권은 제갈근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제갈근은 함께 전란을 겪고 손권을 만나서 은모가 은혜를 등지고 죄악에 빠지게 한 것은 자신의 탓도 있다는 말을 했고 손권은 제갈근의 말을 듣고 은모를 특별히 용서했습니다.


 

 

 



219년 제갈근은 손권군이 관우를 공격할 때 함께 했고 수남장군으로 여몽을 대신해 남군태수 임무를 맡으며 공안에 머물렀습니다.


221년 관우의 죽음으로 분노한 유비가 손권을 공격했을 때 손권은 제갈근을 사자로 편지를 보내 화친을 구했습니다이때 제갈근과 유비가 서로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을 만들어내는 자가 있었습니다육손은 표를 올려 제갈근을 옹호했고 손권은 자신과 자유(제갈근)은 목숨으로도 바뀌지 않을 맹세를 한 사이라며 제갈근을 신뢰했습니다.

 


조비군과의 싸움

222년 제갈근은 좌장군으로 승진하고 공안의 독이 되었으며 완릉후에 봉해졌습니다조비는 손권에게 인질을 보낼 것을 요구했고 손권을 이를 거절했습니다조비는 군사를 일으켜 유수동구강릉 세 방향을 공격했습니다제갈근은 양찬손성반장과 함께 강릉성의 주연을 도우러 갔습니다.

 

제갈근은 하후상에게 한 차례 격파 당했지만 반장에게 의지하며 버텨냈고 위나라의 군대를 막아냈습니다손권은 제갈근에게 실망하는 점이 있었지만 크게 병사를 잃지 않고 적을 막아낸 것을 공으로 삼았습니다.

 


우번

우번은 특유의 고지식함으로 인해 유배까지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우번을 옹호하지 않았지만 제갈근은 그를 위해 변호해주었습니다.


229년 손권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제갈근은 대장군좌호도에 임명되었고 예주목을 맡았습니다.

 


육손

234년 제갈량의 북벌에 호응하여 제갈근은 육손과 함께 강하에 주둔했습니다그런데 군사정보를 전하는 사람이 위나라에 붙잡혀 정보를 빼앗겼고 손권은 정보가 노출되어 불리하다고 생각해 회군을 결정했습니다제갈근은 육손과 함께 전방에 있다가 급하게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며 회군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육손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고 직접 찾아온 제갈근에게 지금 회군하며 적의 공세에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제갈근은 육손의 말을 듣고 회군을 함께 준비하여 피해 없이 회군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

241년 제갈근은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제갈근은 평상시 복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며 검소하게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제갈근의 장남 제갈각은 자신의 공로로 작위를 받았고둘째 제갈교는 동생 제갈량에게 양자로 갔기 때문에셋째 제갈융이 제갈근의 작위를 이었습니다.

 

외모에 대한 일화

<세설신어후한 말에서 동진 말까지의 이야기 모음집

세설신어에는 제갈근의 얼굴이 길쭉해서 당나귀노새와 닮았다는 묘사가 있습니다.

 

손권이 제갈근을 놀리려고 나귀 한 마리에게 제갈자유라고 써 놓았습니다제갈근의 아들 제갈각은 제갈자유’ 뒤에 지려라고 써서 제갈자유지려(제갈자유의 나귀)’라는 문구를 만들었고 이에 사람들은 이에 감탄했고 손권은 제갈각을 칭찬하고 나귀를 상으로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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