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노숙

삼국지 노숙 (172년~217년) 손권

 

노숙은 양주 임회군 동성현 출신으로 자는 자경(子敬)입니다노숙은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그는 베푸는 것을 좋아해서 혼란스러운 시대에 재물을 풀고 농토를 판매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인재들과 친분을 맺어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습니다.

 

노숙은 체구가 사내답고 훌륭했고 절개와 의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기략을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혼란스러운 시대였기 때문에 검기마궁술도 익혔고 젊은이들을 모아 숙식을 돌보며 훈련을 시켰습니다이런 모습을 본 노숙 가문의 어른들은 노씨 가문은 대를 거듭하면서 쇠퇴했는데이렇듯 기백이 넘치는 아이가 태어났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주유와의 인연

주유가 거소현의 현장일 때 노숙에게 자금과 군량을 요청했습니다노숙의 곡식 창고에는 두 곳으로 나뉘어 각각 3천곡의 곡식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을 내어주었습니다이것을 계기로 노숙과 주유는 친분을 쌓고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원술을 떠나다.

원술은 노숙의 명성을 듣고 그를 동성현의 현장으로 임명했습니다노숙은 원술이 큰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문 사람들을 설득하여 거소현으로 가서 주유에게 의지했습니다노숙은 주유와 함께 동쪽으로 장강을 건너 곡아현에 머무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동성현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렀습니다.

 


손권을 따르다.

노숙의 친구 유자양(유엽)은 노숙에게 편지를 보내 거소에서 병사를 모으고 있는 정보를 따르자고 권했습니다노숙은 유엽의 의견에 듣고 정보에게 가려고 했습니다주유는 노숙의 어머니를 오군으로 모셨는데 노숙이 와서 주유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주유는 손권을 추천하며 노숙을 설득했습니다노숙은 주유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주유는 손권에게 노숙을 추천했습니다.

 

주유의 말을 들은 손권은 노숙을 만났고 함께 얘기하며 매우 기뻐했습니다손권이 노숙에게 어떻게 자신을 보좌할 것인지 묻자 노숙은 조조는 항우와 같고 장군(손권)은 제환공이나 진문공처럼 될 수 없습니다한왕실은 다시 일어날 수 없고 조조는 신속하게 제거하기 어렵습니다장군(손권)을 위한 계획은 강동을 차지하고 천하의 변화를 살피다가 황조유표의 땅을 차지하고 제왕을 칭해 한고조(유방)처럼 천하 통일을 꾀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노숙의 말에 손권은 지금은 한왕실을 보좌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손권의 중신인 장소는 노숙이 겸손하지 않고 불손하며 나이가 어리고 거칠어 임용할 수 없다고 몇 차례 비난했습니다하지만 손권은 노숙을 더욱 존중하고 노숙의 어머니에게 생필품을 선물하며 예전처럼 부유하게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손권에게 조언하다.

형주의 유표가 죽자 노숙은 손권에게 말했습니다.

형주는 우리와 가깝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형주를 차지해야 합니다유표가 죽고 그의 두 아들 유기유종을 지지하며 장수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유표에게 의지하던 유비가 유기유종과 서로 협력한다면 그들과 함께 해야 하고 그들의 사이가 멀어진다며 새롭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저는 유표를 조문하고 유기유종과 유비가 조조에게 대항하도록 설득하기를 바랍니다지금 가지 않으면 조조가 먼저 기회를 잡을 것입니다.”

손권은 노숙의 의견을 받아들여 노숙을 보냈습니다.

 

노숙은 하구에 도착했을 때 조조가 군을 일으켜 형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남군으로 향했습니다하지만 노숙이 남군에 도착했을 때 유종은 이미 조조에게 항복했고 유비는 도망치고 있었습니다노숙은 유비를 만나 손권의 뜻을 전하고 제갈량에게 제갈근(제갈량의 형)의 친구라며 친분을 맺었습니다유비는 매우 기뻐했고 하구에 도착해서 제갈량을 사자로 보냈습니다.

 

손권은 조조에 침입에 대비해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장수들은 조조에게 항복하기를 권했습니다손권이 잠시 자리를 떠나자 노숙은 처마 아래까지 따라갔습니다손권은 뒤따라온 노숙의 생각을 물었고 노숙은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좋지 않고 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손권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노숙을 칭찬했습니다. <위서>와 <구주춘추>에는 노숙이 손권을 일부러 도발하여 조조와 싸움을 결심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노숙은 사자의 임무를 받고 파양에 있던 주유에게 가서 그가 돌아오게 했고 손권은 주유를 총지휘관으로 임명하고 노숙을 찬군교위에 임명했습니다적벽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형주를 차지하게 되면서 유비는 손권에게 자신이 형주를 관할하겠다고 청했습니다다른 이들은 이를 반대했지만 노숙은 유비에게 땅을 빌려주고 조조에게 함께 대항하자고 주장했고 손권은 노숙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비에게 형주를 빌려주었습니다조조는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빌려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쓰기위해 들고 있던 붓을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익주목 유장의 힘이 약해지자 주유와 감녕은 손권에게 촉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손권은 유비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유비는 자신이 촉 땅을 차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종친인 유장을 용서해달라며 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관직을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주유는 손유와 함께 익주를 공략할 계획을 세웠지만 병으로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주유의 뒤를 잇다.

주유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주유는 노숙을 후임으로 추천했고 손권은 노숙을 분무교위에 임명하고 주유를 대신해 병사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노숙은 강릉에 주둔하다가 육구로 옮겼습니다노숙은 육구로 가던 도중 노숙이 예전과는 달리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몽을 만났습니다노숙은 여몽과 대화를 나누고 그를 다시 보게 되어 그의 어머니에게 절을 하고 친분을 다졌습니다.

 

오하이몽 괄목상대 (여몽)

노숙이 여몽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단지 무용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학문이 넓고 예전의 오하아몽이 아니구려.”

여몽은 선비는 헤어지고 사흘만 지나도 마땅히 눈을 비비고 대해야 합니다.” 라고 답했습니다이 일로 학문이나 재주가 기대보다 크게 진보한 것을 뜻하는 괄목상대(刮目相對)와 세월이 지나도 학문의 진보가 없는 사람을 뜻하는 오하아몽(吳下阿蒙)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노숙은 맡은 곳을 잘 다스렸고 수하의 병사들은 1만여 명으로 많아졌습니다손권은 노숙을 한창태수평장군으로 임명했습니다. 214년 노숙은 손권을 따라 환성 전투에 참가했고 횡강장군이 되었습니다.

 

유비가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고 익주의 유장을 공격하자 손권은 예전에 유비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형주의 경계 지역에서는 가끔 분쟁이 일어났는데 노숙은 이를 우호적으로 처리하곤 했습니다.

 


유비와의 불화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자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의 장사영릉계양 세 군의 반환을 요청했습니다하지만 유비는 이를 거절했고 손권은 여몽을 파견하여 형주를 공격하게 했습니다유비는 소식을 듣고 공안으로 와서 관우를 보내 손권군과 싸우게 했습니다.

 

관우는 노숙과 대치하다가 만나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관우 좌장군(유비)는 군중에 몸을 두시고 주무실 때도 갑옷을 벗지 않고 협력하여 얻은 땅인데 무슨 연유로 땅을 빼앗으려 하시오?”

노숙 그대의 말은 옳지 않소장판에서 예주(유비)를 살펴보았을 때 병사들도 없었고 기세도 무너진 상태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에 형주를 얻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일이었소주상(손권)은 예주(유비)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힘을 빌려주며 세력을 돌볼 수 있게 했는데 예주(유비)는 사사로운 마음으로 은혜를 잊고 익주를 차지했는데도 불구하고 형주의 땅까지 차지하려고 하니 이는 군주가 할 행동이 아니오탐욕에 따라 의를 저버리는 것은 재난을 불러오는 것이며 그대(관우)는 중임을 맡았음에도 도리와 의를 지키지 않고 힘을 겨루고자 하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관우는 이에 답하지 못했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조조가 한중을 차지하면서 이를 경계한 유비는 손권과 다시 화친하게 되었습니다상수를 경계로 하여 형주를 분할하고 세 군을 손권에게 반환했습니다.

 


죽음

217년 노숙은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손권를 그를 애도하며 장례식에 참가했고 제갈량도 노숙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노숙(魯肅)의 자식으로는 유복자(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인 노숙(魯淑 노숙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평가

노숙의 사람됨은 근엄하여 겉을 꾸미지 않았고 절약에 힘썼습니다저속한 취미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질서 있고 엄격하게 군을 통솔했습니다군중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말솜씨문장 솜씨가 뛰어났습니다사려가 깊고 총명함이 뛰어났습니다. <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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