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동승 ( ? ~ 200년)
동승은 기주 하간국 사람으로 동태후의 조카라는 설도 있지만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되기도 합니다. 동승은 동탁의 사위인 우보의 부곡장으로 있었는데 동탁이 죽은 뒤 여포, 이각, 곽사 등의 권력 다툼에도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왕윤과 여포 등에게 동탁이 죽고 가후의 조언을 받아들인 이각과 곽사가 장안을 공격해 차지하면서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후 이각과 곽사는 서로 패권을 잡기 위해 대립하다가 195년 장제가 이각과 곽사의 사이를 중재했습니다.
헌제(유협)이 장안을 떠나 낙양으로 향할 때 동승은 안집장군에 임명되어 헌제를 모셨습니다. 곽사가 마음을 바꿔 헌제를 데려가려고 하자 후장군 양정과 흥의장군 양봉이 곽사를 격파했고 곽사는 이각과 합류해서 헌제를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헌제 일행이 화음에 도착했을 때 그 곳을 다스리고 있던 영집장군 단외는 헌제 일행을 자신의 진영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단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양정과 충집이 반대했고 동승도 곽사군이 단외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참언하면서 헌제 일행은 화음을 떠나게 됩니다. 단외는 헌제를 독점하려는 양심이 없었고 이후 단외와 싸우던 양정은 이각과 곽사의 공격을 받아 형주로 도망쳤습니다.
표기장군 장제는 동승, 양봉과 대립하다가 이각과 곽사의 편으로 가담했습니다. 동승과 양봉은 동간에서 이각, 곽사, 장제의 연합군과 싸우다가 패배했습니다. 이후 조양간에 도착한 동승과 양봉은 호재, 이락, 한섬, 남흉노 좌현왕 거비와 연합해서 이각, 곽사, 장제 연합군과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달에 이각, 곽사, 장제 연합군에게 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패배한 헌제 일행은 배를 타고 물길로 도망쳤습니다. 많은 관인들이 배를 타려고 달려들었지만 동승은 무기를 휘둘려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헌제 일행은 수십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락과 하내태수 장양, 하동태수 왕읍 등의 도움을 받아 안읍까지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조조와의 만남
196년 조조는 조홍에게 병사를 이끌게 하며 헌제 일행을 맞이하게 했습니다. 동승은 원술군의 장노와 함께 요새를 수비하며 조홍을 막았지만 헌제를 모시던 장수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한섬은 동승을 공격했고 동승은 장양에게 도망쳐 의지했습니다. 장양은 동승에게 낙양으로 가서 궁전을 수리하라고 말했고 동승을 그 말을 따랐습니다.
마침내 헌제가 낙양에 도착했고 동승은 한섬, 장양, 양봉 등 헌제의 수행을 맡았던 이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해 조조를 끌어들여 그들을 몰아냈습니다. 조조는 헌제를 허창으로 모셨고 동승은 열후에 봉해졌습니다.
조조 암살 실패와 죽음
199년 동승은 거기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조조의 권력이 갈수록 강해지면서 동승은 헌제의 조칙을 받아 왕자복, 오석, 오자란, 충집, 유비 등과 함께 조조를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200년 계획이 발각되면서 동승을 포함한 많은 관련자들은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동승의 딸은 헌제의 후궁인 동귀비였는데 그녀도 처형당하게 됩니다.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 동승은 충신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헌제 일행을 배를 타고 도망칠 때 배에 타려는 관인들을 쫓아낸 것은 이락의 행동으로 바뀌었고 이후 조조가 헌제를 모시면서 권력을 잡자 동승은 헌제를 위해 조조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동승은 한나라의 충신들인 왕자복, 오석, 오자란, 충집, 마등, 유비 등을 모집해 연판장에 서명을 하게 합니다.
서량에 반란이 일어나며 마등이 떠나고 유비는 원술을 치기 위해 서주로 떠났다가 서주 자사 차주를 해치우고 조조와 대립을 했습니다. 동승은 의원인 길평과 함께 조조에게 독약을 먹이려고 하지만 밀고자에 의해 조조가 계획을 알게 되면서 실패하고 맙니다. 길평은 조조에게 독약을 먹이려다가 발각된 사실을 알고 자결하고 조조는 동승의 집에서 증거를 찾아내 동승, 왕자복, 오석, 오자란, 충집 등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처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