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이각, 곽사

삼국지 이각 ( ? ~ 198후한 말

 

이각은 양주 북지군 사람으로 자는 치연(稚然)입니다. 191년 화웅이 손견에게 사망하자 동탁이 손견에게 화친을 맺는 사자로 이각을 보내지만 손견은 화친을 거절합니다동탁이 장안으로 천도를 강행하고 원술과 내통하던 주준은 형주로 도망쳤다가 군대를 이끌고 낙양을 공격합니다이각은 곽사와 함께 주준의 군대를 격파하고 진류영천의 백성들을 학살했습니다.

 

영천에 있던 순욱은 이각의 침략을 두려워하며 장로들에게 피난 갈 것을 권했지만 장로들은 응하지 않았고 순욱은 자신의 익족들만 데리고 기주로 피난을 갔습니다결국 영천을 공격을 받아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권력을 잡다

192년 왕윤여포가 동탁을 죽이고 이숙에게 우보를 공격하게 했습니다우보는 이숙을 물리쳤지만 부하 복호적아의 배신으로 죽고 말았습니다이각은 왕윤에게 용서를 빌며 사면을 청했지만 거절당했고 가후의 계책을 받아들여 곽사와 함께 장안을 기습하게 됩니다.

 

이각의 기습 계획을 알아낸 왕윤은 호진서영양정 등에게 이각을 상대하라고 했지만 서영은 이각에게 토벌당하고 호진양정은 이각에게 투항했습니다결국 장안은 이각군에게 포위되어 함락 당하고 맙니다이각은 왕윤과 왕윤의 일족을 처형했고 여포는 도망쳤습니다황제를 모시며 권력을 잡은 이각은 거기장군개부영사예교위가절이양후에 봉해졌습니다.

 

194년 정서장군 마등은 이각과 친분을 맺으려다가 이각이 거절하자 한수와 함께 장안을 공격했습니다이각은 마등과 한수를 물리치고 마등과 호응해서 쳐들어온 익주의 유언도 물리쳤습니다이각은 원소와 조조를 견제하기 위해 원술공손찬도겸 등에게 헌제의 이름으로 작위를 수여하며 화친을 도모했습니다.


 

 

 



폭정

이각과 곽사를 장안을 분할해서 통치했는데 병사들을 마음대로 하게 놔두며 제대로 통치하지 않아 백성들은 굶주리고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또 동료 번조를 한수를 놓아주었다는 이유로 처형하면서 세력은 약해져 갔습니다이각과 곽사는 호화로운 생활을 지속했고 백성들은 더욱더 굶주렸습니다.

 


죽음

이각과 곽사는 이후 사이가 틀어져 서로 싸우게 되었는데 헌제가 기회를 틈타 도망쳤습니다장제가 이각과 곽사를 화해시키고 두 명은 헌제를 쫒아갔습니다헌제는 겨우 추격에서 벗어나 황하를 건너 낙양으로 도망쳤고 결국 헌제를 잃으면서 황제라는 구심점을 잃은 이각과 곽사는 점점 쇠퇴하며 약해져가다가 198년 조조의 부하 단외와 배무에게 토벌당하고 삼족이 모두 처형 당했습니다.





 



삼국지 곽사 ( ? ~ 197후한 말

 

곽사는 양주 장액군 사람입니다곽사는 서량에서부터 동탁을 따랐습니다. 192년 동탁이 죽고 곽사는 이각장제번조 등과 함께 가후의 계략을 듣고 장안으로 쳐들어갑니다장안성을 차지하고 왕윤과 일족을 처형했습니다이 과정에서 곽사와 여포가 1:1로 대결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곽사는 여포와의 일기토에서 부상을 입고 물러났습니다.

 

이후 행적은 이각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각과 비슷합니다.

194년 마등이 한수와 함께 장안을 공격했고 곽사는 번조와 함께 마등군을 격파했습니다.

 

195년 이각이 한수를 놔주었다는 이유로 번조를 죽이고 이후 이각과 곽사는 사이가 틀어져 서로 싸울게 됩니다헌제가 도망치고 조조의 공격으로 군대가 괴멸되면서 도적과 같은 생활을 하다가 197년 미현에서 부하 오습의 배신으로 죽었습니다.

 

곽사는 정치적인 면에서는 무능한 인물로 평가되지만 전투적인 면에서는 인정을 받는 부분이 있습니다장안을 차지하고 한동안 헌제를 모시며 권력을 잡기도 했고 이각과 사이가 틀어져 싸울 때 적은 병력으로 이각군을 격파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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